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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쓴 예수, 선녀 닮은 천사...70년 만에 재조명된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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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도깨비를 떠올리게 하는 사탄….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53년에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이 완성한 '예수의 생애' 성화 30점 연작 속 모습이다. 한국 근대 대표화가인 김 화백은 6·25 전쟁 중 군산 피난 생활을 하다가 미국 선교사 앤더스 젠센의 권유로 한국화 성화 연작을 완성했다. 이 성화들이 70년 만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의 해설과 함께 <예수의 생애 >로 출간됐다.



김 화백의 성화는 한국의 미(美)가 담겨 있는 게 특징이다. 성경 속 인물들은 한국 전통 복장을 갖췄고,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여관의 축사 등은 한옥으로 그려냈다. 열두 제자는 상투를 틀었고,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전하는 천사는 옛 동화 속 선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 봐도 파격적인 그림이다.



김 화백은 1만원짜리 지폐 속 세종대왕의 초상을 그린 화가다.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표지에도 실린 '아악의 리듬'을 비롯해 '군마도' '청산도' 등을 남겼다. 7살에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된 그는 독실한 신앙과 예술 활동을 통해 위안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1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했고,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만큼 친일 행적 논란을 피할 수 없지만, 그의 작품들은 근현대 미술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성화 해설을 맡은 소 목사는 책 서문에서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성화는 기독교 문화의 지평을 넓힌 불후의 명작"이라며 "우리나라의 친숙한 옛 산천 배경에 도포 자락 휘날리며 갓을 쓰신 예수님의 그림은 예술적 창의성과 함께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의 서정과 사유의 미를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이번 성화집은 쿰란출판사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됐다. 기독교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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