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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오펜하이머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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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그의 삶에 관한 글이 많이 나온다. 그런 글들은 거의 다 그가 완고한 미국 우익의 박해를 받았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오펜하이머에 관한 이런 주장들은 근거가 없고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와 글들은 먼저 그가 아주 뛰어난 과학자였음을 강조한다.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으레 따른다. 그의 몰락을 더욱 비극적으로 꾸미기 위한 수순이다. 그러나 핵폭탄의 출현은 많은 과학자의 기여에 힘입었다. 특히 중요한 이정표들은 핵분열과 핵연쇄반응의 설명이었다.

그런 과학자들의 명단에 오펜하이머의 이름은 없었다. 핵폭탄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폭탄의 설계였다. 핵폭탄은 임계 질량 아래의 핵물질 덩이들을 폭발 직전에 합쳐서 폭발적 연쇄반응을 얻는다. 우라늄 폭탄은 총형 설계(gun-type design)로 가능한데, 플루토늄 폭탄은 핵물질을 공 모양으로 만든 내파형 설계(implosion-type)를 따랐다. 그 복잡한 폭발 과정의 모의실험(simulation)은 위대한 수학자 존 폰 노이먼이 수행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호칭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한데 모아 이미 원리가 알려진 핵폭탄 개발을 실제로 수행하는 ‘맨해튼 사업’에서 오펜하이머는 핵심 부서인 ‘Y 사업부’의 책임자였다. 그는 과학 지식과 경영 능력을 아울러 갖춰 직무를 잘 수행했다. 그것은 큰 공헌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 어려운 직무는 아니었다.

미국 보안 부서들은 오펜하이머의 임명에 거세게 반대했다.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미연방수사국(FBI)과 육군 보안 부서는 그와 그의 가족, 제자들이 1930년대 초엽부터 미국공산당 당원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맨해튼 사업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즈 대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1949년 6월에 오펜하이머는 하원 반미행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위증임이 드러났으니, 그는 적어도 1941년까지 공산당원이었다. 1940년대 초반에 미국이 러시아 정보기구의 통신을 감청한 ‘베노나 사업’ 문서들은 오펜하이머가 공산당원 신분을 넘어 러시아 첩자였음을 보여줬다. 1945년 3월 21일에 모스크바의 러시아 정보기구 NKVD 본부가 뉴욕 지부에 보낸 전문은 “VEKSEL과의 접촉을 다시 확립하라”고 독촉했다. VEKSEL은 오펜하이머의 암호명이었다. 즉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사업이 성과를 내기 전에 이미 러시아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후일에 미국 작가들이 얻은 러시아 비밀 자료는 오펜하이머가 처음으로 러시아를 위해 일한 시기를 밝혀줬다. 그 자료는 NKVD 요원 그레고리 하이피츠가 1941년 12월부터 1942년 초까지 오펜하이머와 접촉했고 핵폭탄 기밀을 대량 유출한 클라우스 푹스를 맨해튼 사업에 고용하도록 유도했다고 기술했다.

일반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외국 첩자로 모는 일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나온다. 북한 정권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지도부를 ‘미제 스파이’로 몰아 처형한 것은 대표적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외국 첩자로 몰기 위해 증거들을 조작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권에 밉보인 사람을 파렴치범으로 모는 것이 훨씬 쉽고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이다.

여기서 물음 하나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왜 이처럼 확립된 사실들을 비틀어서 역사적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가 나오는가? 베노나 문서와 같은 확실한 증거들이 있는데, 왜 억지를 쓰는 자가 그리 많은가?” 이런 현상은 워낙 거대해서 하나의 요인만으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요인은 베노나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만 해독됐지만, 그 문서는 349명의 첩자가 미국에서 암약했음을 보여줬다. 그 가운데 171명만이 실명이 확인됐다. 나머지는 여전히 요직들에서 암약했고, 그들의 후예가 지금도 미국의 요직들에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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