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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 크럼펫, 깻잎 파블로바, 누룽지 사워도우…런던 만난 제주가 사르르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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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파인다이닝업계에 영국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런던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 한국인 셰프로선 처음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매년 세계 요리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미쉐린가이드 아닌가. 문을 연 지 1년 만에 그 빛나는 별을 받은 주인공은 박웅철 셰프,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 부부가 운영하는 ‘솔잎’이다. 부부는 런던에서 처음 만나 요리를 시작하고 제주 해비치호텔&리조트의 푸드랩과 레스토랑 밀리우에서 5년간 일했다. 그리고 런던으로 다시 가서 그들의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8월, 어려운 시기에 문을 연 솔잎은 한식당이 아니라 서양식 레스토랑의 틀과 기술에 한국식 재료와 터치가 덧입혀진 곳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첫걸음을 뗀 솔잎은 미쉐린 스타를 받기 전 영국의 각종 미식어워드에 이름을 올리며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복잡한 구성의 요리가 아니라 단아함과 세련미로 무장해 그 자체의 균형감을 잘 보여준다”는 게 미쉐린가이드의 평가다.
맛·향·멋 모두 눈부셨던 11가지 코스

그런 그들이 지난달 제주를 찾았다. 국내 첫 갈라 디너를 해비치와 함께 기획한 것이다. 제주도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지만 바로 예약하고 8월 10일 제주도에 갔다. 이번 갈라 디너는 해외에서 경험하는 여느 디너와는 달랐다. 훌쩍 성장해 글로벌 미식업계의 스타가 된 솔잎의 두 셰프, 그들이 처음 같이 일한 제주 해비치 밀리우에서 손발을 맞췄던 셰프와 스태프들이 모두 함께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제주 생활과 그들의 연대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순간이 어우러지며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번 밀리우와 솔잎의 갈라 디너는 솔잎의 시그니처 요리는 물론 제주산 식재료로 계절감과 지역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리로 11가지 코스가 구성됐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멋을 더한 건 와인 페어링. 박웅철 기보미 셰프와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로 프랑스에서 이 갈라 디너를 위해 제주로 날아온 하석환 소믈리에가 코스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선정하고 직접 서비스해 갈라 디너의 완성도를 끌어 올렸다(다음 날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최고 소믈리에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갈라 디너의 스타트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셰프 부부는 디너 전날에야 입국했지만, 오래전 같이 일한 동료들과의 팀워크와 소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솔잎의 요리가 지닌 특유의 사뿐하게 내려앉은 향미, 입 안을 부드럽게 감아 도는 섬세한 질감, 보디감을 잃지 않는 설계는 제주를 완벽히 이해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요리들이었다.
낯선 듯 익숙한 … 입안 가득 ‘제주 정취’

전채 요리는 참외, 6개월 이상 숙성한 약고추장으로 버무린 갈빗살 타르타르, 영국식 팬케이크를 응용한 감태 크럼펫이 나왔다. 한 입 거리로 입맛을 돋우는 이들은 산미와 감칠맛, 짭짤한 식감까지 다채로움을 자랑했다. 온화한 온도의 감태 크럼펫은 은은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여기엔 드라피에 샴페인, 카르트 도르 브뤼가 함께했다.


제주 물회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물회는 제철을 맞은 한치를 주인공으로 담아냈다. 이어 무를 얇게 썰어 캐러멜라이징한 ‘무 타르트 타탕’과 영국에서도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으로 인기가 많은 ‘누룽지 사워도우’가 구성됐다.


전채 요리 3종엔 부르고뉴 알리고테의 ‘니콜라스 라스피어’(2021) 와인이, 이어 나온 요리엔 프랑스 내추럴 와인인 옥타방 ‘힙힙 사바냥 메세어’(2020)가 함께했다. ‘금태&XO’는 제주의 정취를 한껏 뽐냈다.

메인 코스에선 바비큐 ++한우와 비스크 소스를 더한 솥밥이 정점을 찍었다. 매혹적인 브루넬로 몬탈치노 ‘카사노바 디 네리’(2017)가 어우러졌다. 열무 가니시의 수더분한 모습과 대비되는 한우의 고소함, 중국풍 느낌까지 선사한 솥밥과 크리미한 비스크 소스는 개성이 돋보이는 조합이었다.
제주愛 녹인 요리, 감동 더해
기보미 셰프는 이 뻔하지 않은 감동을 더 끌어올리는 디저트를 선보였다. 풋귤과 알로에로 입에 쌓인 잔미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제주의 습도와 날씨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기보미 셰프는 영국에서 직접 만들어온 깻잎 파블로바도 선보였다. 머랭의 촘촘하고도 가벼운 텍스처와 은은하고 기품있는 들기름 한 방울의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입가에 닿는 첫 느낌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들기름의 향도 파블로바 안을 채운 재료의 감미까지 무엇 하나 서툰 것이 없었다. 이어 제주 밤호박으로 만든 마들렌과 과일 젤리가 코스를 마무리했다.

해비치와 솔잎의 갈라 디너는 두 셰프가 런던에 살며 제주에 대해 가진 마음, 그리고 자연과 사람으로 채워져 있는 애정을 마음껏 선보인 자리였다. 영국에서 자신들의 요리와 디저트를 선보이며 한국의 맛과 정서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위치에서 그들이 보내는 고국에 대한 찬사랄까. 해비치가 그동안 그들만의 속도와 방향성, 진정성으로 이어온 결과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울의 수운, 중심, 마이클바이해비치 등 안정적이고 집중도 높은 레스토랑까지 해비치를 거쳐 간 인재들의 성장과 외식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차츰 눈에 띄고 있다.

제주=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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