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케네스 브래나(1960~)는 20~30대엔 주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연출가로 활동했다. 브래나는 이후 ‘해리포터’ 시리즈의 록하트 역과 ‘토르 : 천둥의 신’ 감독 등을 맡아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런 그가 최근 관심을 쏟는 배역은 세계적인 영국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에서 해결사로 나오는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다. 13일 개봉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사진)은 브래나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과 ‘나일강의 죽음’(2022)에 이어 출연한 크리스티 원작 기반의 추리극이다. 두 전작과 마찬가지로 브래나가 직접 연출하고 포와로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나 장르적 특징은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수많은 전작을 리메이크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강의 죽음’과 달리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과거에 개봉한 영화가 없어서다. 이 작품의 원작은 크리스티의 1969년 발표작 <핼러윈 파티>다. 두 전작의 각본을 쓴 마이클 그린은 이번엔 창작력을 십분 발휘했다. 배경부터 다르다. 원작은 영국의 한 시골 마을이지만 영화에선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47년, 이탈리아 베니스다.
이 영화는 합리성에 기반한 추리극을 표방한 전작들과 다르다. 오랜 탐정생활에서 은퇴한 뒤 베니스에서 평범한 삶을 즐기던 포와로에게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추리 작가인 올리버(티나 페이 분)가 찾아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심령술사 레이놀즈(양자경 분)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레이놀즈 주관으로 1년 전 죽은 어린 딸의 유령을 소환하는 의식에 참석한 포와로와 올리버. 의식이 끝난 뒤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유령이다.
전작들에 비해 축소된 공간적 스케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역동성을 ‘유령’이 불러오는 공포와 긴장감이 만회하고도 남는다. 브래나가 연출하고 출연한 ‘포와로’ 영화 중 극적 짜임새와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심령술사로 등장하는 양자경이 극 중 적은 비중과 분량에도 강렬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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