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는 매력적인 장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이니 설치작품이나 추상화 등에 비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고 공감하기도 쉽다. 모델의 감정과 상황을 비롯해 작가의 세계관과 전하려는 메시지, 시대상 등 다양한 의미도 녹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초상화를 많이 그리는 화가가 드문 편이다. 한국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 만한 초상화 전시도 드물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최병진 작가(48·사진)의 개인전은 간만에 초상화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최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강박과 콤플렉스를 초상화 20여 점으로 풀어냈다. 그는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6년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가 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낸 작가다. 하지만 작품 활동은 뜸한 편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생업과 그림을 병행해야 했고 강박증을 앓았기 때문”이라며 “이를 해소하느라 2015년 정도부터 ‘초상’ 시리즈를 시작했고, 덕분에 강박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초상화는 일종의 자화상이지만,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보편적인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작품 속 얼굴을 감싸고 있는 갑옷과도 같은 기하학적 형상은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저마다의 방어 기제를 상징한다.
예술로 강박증을 해소하는 과정이 작품에 드러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강박증이 심했던 초기 작품에서는 갑옷이 얼굴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다. 그런데 작업이 계속되고 강박 증상이 개선되면서 작품 속 얼굴의 모양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얼굴을 감싸는 구조물의 모양도 부드러워지고 색은 다채로워졌다. 작품에 적힌 일련번호가 제작 순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최 작가는 “내 자신이 단단해지고 성장하면서 갑옷을 두를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라며 “그림 속 얼굴이 갑옷을 모두 벗게 되는 날에는 또 다른 화풍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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