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미생물 농약업체 고려바이오의 김영권 대표는 최근 경기 동탄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이제는 페루 칠레 등 남미가 우리의 주 무대”라고 했다. 고려바이오는 2008년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친환경 미생물 농약을 수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농약사가 주도하는 남미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11개국에 친환경 농약을 수출하고 있고 특히 페루 시장에선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 대표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생물을 공부한 뒤 1986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현대 삼성 SK 등 대기업이 농약 사업에 뛰어들고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선 유기농 시장이 커지며 친환경 농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언젠가 이 시장이 커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고려바이오를 설립해 미생물 농약 개발에 나섰다. 미생물 농약은 천연물과 미생물을 해충 체내에 침투시켜 병충해를 막는 방식을 쓴다. 유기합성 농약보다 독성이 적고 잔류 물질이 없어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활용된다.
고려바이오가 생산한 농약은 농가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나의 농약으로 다양한 병해충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창업 첫해 1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10년 만에 80억원대로 늘었다. 하지만 이미 국내 농약 시장은 농가 인구 감소와 함께 정체 상태였다. 이 와중에 경쟁 업체까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김 대표는 “그즈음 해외 유명 제품을 들여와 국내에 팔아봤는데 우리 제품과 별 차이가 없었다”며 “국내에선 성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수출로 눈을 돌린 이유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이었다. 2007년 인도에 미생물 농약 1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데 이어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으로 시장을 넓히며 2010년엔 100만달러어치 이상의 농약을 수출했다. 그러나 이후 수요가 크게 늘지 않아 수출액이 다시 정체됐다.
돌파구는 2017년 농약 분야 최대 행사인 중국 국제농약·비료박람회에서 찾았다. 다른 농약업체가 정부 지원으로 마련한 작은 부스에서 마케팅할 때 고려바이오는 단독으로 대형 부스를 차렸다. 고려바이오의 친환경 농약은 글로벌 대기업 제품에 비해 가격이 20%가량 싸면서도 병충해 방지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전시회를 찾은 페루 바이어의 눈에 들었다. 이 바이어는 페루 농약 유통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업체였다. 현지 블루베리, 아보카도, 오렌지 농장에서 주문이 이어졌다.
이 덕분에 2019년까지 110만달러 선에 멈춰 있던 수출액이 지난해 260만달러로 불어났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7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올해 전체로는 300만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김 대표는 “페루에 이어 칠레로의 수출도 곧 본격화할 것”이라며 “현지 해충에 맞춘 농약을 꾸준히 개발해 고객층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제작 지원=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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