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야구와 미식축구의 나라’ 미국에 축구 열기를 점화시켰다. 작년 최하위였던 인터 마이애미를 우승팀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메시는 대회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상도 거머쥐었다. ‘메시의 기적’이 미국에서 다시 이뤄진 것이다.
스포츠로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한 데 이어 메시에게도 손을 뻗었다. 연봉 6000억원을 제시하면서. 하지만 메시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구단에서 제시한 연봉은 700억원에 불과하지만 다른 매력적인 조건이 붙어 있었다. 애플TV 구독자 증가에 따라 러닝 개런티를 받는 계약을 맺었고, 아디다스와도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가 미국을 택한 이유 중에는 미국이 축구를 키울 것이란 점도 감안됐을 것이다. 2026년 월드컵은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지만, 총경기의 60%가 미국에서 열린다. 미국으로선 축구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축구는 ‘히스패닉 스포츠’란 인식이 강하다. 히스패닉이 흑인을 제치고 백인에 이은 미국 내 ‘넘버2’가 된 지 20년이 지났다. 히스패닉이 미국 전체 인구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런 히스패닉에게 메시는 친근한 이웃이자 영웅이다.
그런데 왜 하필 마이애미였을까. 간단하다. 마이애미가 미국에서 가장 히스패닉적인 도시여서다. 이곳에선 히스패닉이 정치·경제·문화·언어적으로 주류다. 마이애미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등진 쿠바인들이 찾아와 정착한 곳이다. 이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수완도 좋아 대부업, 상업, 건설업, 담배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1950년 50만 명 정도였던 마이애미와 위성도시 인구는 550만 명으로 불었다. 쿠바인들이 자신들을 마이애미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멕시코계, 푸에르토리코계 히스패닉이 이주하면서 거대한 라틴계 도시가 됐다. 그러다 보니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대기업들도 마이애미를 전초기지로 삼게 됐다.
이 도시에서 법률사무소나 병원을 개업하려면 스페인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필수다. 마이애미에 사는 백인들은 “인종적으로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러니,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 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메시와 그의 가족에게 마이애미는 미국인 동시에 라틴아메리카다. 메시가 사우디아라비아 대신 미국을, 미국에서도 마이애미를 택한 이유다.
마이애미가 꼴찌에서 우승팀이 된 이번 컵대회의 결승전은 원래 마이애미 홈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작 2만 명만 수용하는 홈구장으론 관중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장소를 옮겼다. 결국 낙점된 곳이 6만5000명을 수용하는 마이애미 돌핀스의 미식축구장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국에서 ‘마이너 스포츠’인 축구가 ‘메이저 스포츠’인 미식축구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어서다. 메시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메시라는 축구 ‘고트’(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의 등장으로 미국 스포츠 지형도가 바뀌는 상상을 하는 건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그 이면에 미국 히스패닉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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