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시공사 선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시공사 선정 시기를 ‘사업시행계획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긴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조합설립인가 직후 시점에서는 구체적인 건축 계획이 없고 설계 확정 과정에서 공사비가 늘어날 수 있다. 서울시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시점에서 공사비 검증을 의무화하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아파트 최고 높이를 건축 계획보다 올리는 등의 대안설계를 금지해 ‘공사비 깜깜이 증액’을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높이·용적률 바꾼 대안설계 금지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기준’을 개정한다고 8일 발표했다. 지난 3월 서울시 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해 시공사 선정 시기를 사업시행계획 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겼다. 조합은 시공사 보증으로 자금을 조달해 정비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조례 개정으로 시공사 선정을 할 수 있게 된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는 8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서울시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공사비 총액만 기재한 ‘총액입찰’이 가능하게 했다. 기존에는 공사에 필요한 철근·콘크리트 등 물량과 단가를 기재한 내역입찰만 가능했지만, 구체적인 건축계획이 없는 조합설립인가 직후 시점에서는 내역입찰이 불가능하다. 서울시는 총액입찰을 허용하는 대신 건축계획이 반영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시점에서 공사비 검증을 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에 제안하는 대안설계는 ‘기존 정비계획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기로 했다. 용적률·높이·도시기반시설·기부채납 등 기존 정비계획 변경을 전제로 한 대안설계는 금지된다는 얘기다. 재정비촉진계획상 고도 제한(90m)을 넘은 118m 특화설계로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용산구 한남2구역 사례가 계기가 된 조치로 풀이된다. 서울시는 “조합이 제안한 기본설계 외에 시공사가 내놓은 모든 설계는 대안설계로 볼 것”이라며 “특화설계나 특화대안 등 명칭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일명 OS(아웃소싱) 요원을 이용한 과열 수주전을 방지하기 위해 시공사의 개별 홍보도 금지하기로 했다. 대신 2회 이상 합동홍보설명회를 열고, 첫 설명회 이후에는 공동 홍보 공간 1개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물품·금품·재산상의 이익 제공은 모두 금지된다.
○규정 위반하면 ‘입찰 무효’
서울시와 자치구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마련됐다. 조합은 시공사 입찰공고를 내기 전 선정계획 등을 자치구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자치구의 사전 검토를 반영해야 입찰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시공자 선정 기준 등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반이 정비사업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 입찰참여자가 정비계획을 벗어난 대안설계를 제시하거나 홍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선정되면 입찰을 무효로 본다는 규정도 반영됐다.‘철근 누락’ 같은 부실시공이나 하자를 막기 위해 조합이 제시하는 ‘공동주택 성능요구서’가 의무화된다. 이 문서에는 구조 안전과 소음방지, 누수방지, 결로방지 같은 항목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행정예고 기간을 거쳐 규제개혁위원회 심의와 고시 후 다음달 말께 시행 예정이다. 서울시는 공공지원 설계자 선정 기준에 대한 개정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모든 피해는 조합원과 주민에게 돌아간다”며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고품질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시공사 선정 문화를 정착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