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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과학기술자 알렉산드라 로드리게스는 런던 남부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 최근 그가 집주인에게 화재 경보기를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되돌아온 답변은 로드리게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집주인은 "두 달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그리고는 부동산 웹사이트에 해당 집의 임차인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집주인이 새롭게 제시한 월 임대료는 1800파운드(약 300만원). 로드리게스가 기존에 지불하던 임대료보다 40%나 급등한 수준이었다.
5일(현지시간) 글로벌 부동산 중개업체 새빌스에 따르면 런던 주택의 월 임대료는 2020년 3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약 3년 사이에 평균 20%가량 상승했다. 런던과 런던 외곽 지역을 총칭하는 '그레이터 런던'에서 1베드룸 아파트의 월세 중앙값(통계집단의 변량을 크기 순서로 늘어놓았을 때 중앙에 위치한 값)은 1600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튜디오 형태의 원룸의 월세 중앙값도 1275파운드나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로드리게스가 겪은 일은 이제 런던에서는 흔한 풍경이 됐다"며 "지난 20여년 간 영국 민간임대 부문의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2000년대 들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품이 확산하면서 '긴축(금리 인상) 사이클'에 취약한 중산층 임대인들을 양산했다는 설명이다.
머니팩트 자료에 의하면 영국의 2년 평균 모기지 금리는 2022년 8월 연 4.5%에서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연 6.6%까지 치솟았다. 이에 모기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산층 임대인들은 임대료 줄인상에 나서고 있다. 또한 영국 주택 임대시장에서 공급은 감소하는 반면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이민자 수가 기록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다 학생전용 기숙사가 부족해진 대학생들이 민간임대 부문으로 밀려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임대주택 재고는 2022년 5년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이후 잠시 회복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감소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첫 주택 구매자를 지원하는 제도의 기한이 만료된 것도 임대 주택 수요를 견인했다. 부동산 컨설팅 기업 주플라의 리처드 도넬 리서치책임자는 "런던에서 주택을 구입하려면 10만파운드의 소득과 14만파운드에 달하는 보증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임대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임대 시장에서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JLL의 런던 임대 책임자 닐 쇼트는 "20년 동안 부동산 중개업에 몸담아왔지만 얼마 전에 30분새 20명이 집을 보러 오는 일을 처음으로 겪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달치 임대료를 선불로 납부하겠다는 임차 희망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