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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또 은행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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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에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등장한 것은 지난 7월 5일이다.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뒤이어 하나·국민·신한·우리은행이 일제히 판매에 들어갔다.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놓은 것은 늘어나는 가계대출 수요에 대응하고, 금리 상승기에 취약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50년 동안 빚을 갚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란 예상과 달리 50년 주담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출시 한 달 만에 5대 은행의 취급액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8월 들어선 2조원 넘게 불어났다.

수요가 몰린 이유는 당장 부담이 작아서다. 만기가 늘어나면 소비자가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줄어든다. 그만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낮아져 대출 한도도 높아진다. 다른 대출이 없는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이 연 4.45% 금리로 주담대를 받으려 할 때 30년 만기는 3억3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지만 만기를 50년으로 하면 4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출시 두 달 만에 이 상품은 사라지거나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크게 축소될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빚 급증 요인으로 50년 주담대를 정조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 상품이 대출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고 다음달까지 강도 높은 현장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각 은행에 검사 인력을 보내 대출 심사의 적정성과 영업전략, 관리체계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또 은행이 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40년 만기’를 적용하도록 해 실제 대출액이 줄어들도록 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당국의 압박에 농협·경남은행은 50년 주담대 판매를 중단했다. 다른 은행들은 판매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당국의 방침에 맞춰 이용자를 만 34세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50년 주담대를 통해 내 집 마련을 계획한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은행 창구에는 ‘막차’를 타려는 차입자가 몰려들고 있다. 40~50대에선 나이를 기준으로 대상을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불만도 많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담대 차주의 평균 상환 기간은 7년 정도다. 대출을 만기까지 두지 않고 그 전에 갚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이와 만기를 관련지어 젊은 층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다.

은행들도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다. 당국이 초장기 주담대를 장려해놓고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은행들만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주담대 만기가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만기가 늘면 주택 구매에 대한 부담이 줄어 주거 안전성을 꾀할 수 있다는 당국의 주도로 그해 4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이 등장했다. 작년엔 주택금융공사가 50년 만기 상품을 출시했다. 주담대 만기는 사실상 은행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당국의 정책금융상품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금리 상승기에 주담대 고객을 위한 금융 지원 차원에서 만기를 늘렸는데 이제 와서 가계빚 증가 주범으로 몰리니 억울할 만도 하다.

당국의 방침에 전문가들은 금융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초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가 계속됐는데도 당국은 시중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 ‘정책 엇박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금융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당국의 ‘갈지(之)자’ 행보가 시장과 소비자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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