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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IT시설 근로자 불법파견 소송 승리…분쟁 기류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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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가 교통관리시스템 등 고속도로 정보통신시설을 관리하는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과의 불법 파견 소송전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도로공사가 과업지시서를 두고 용역업체들에 어떤 업무를 해야하는지 정보를 제공했다고 해서 이 업체들의 직원들을 상대로 지휘·명령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 근로자들이 불법 파견 여부를 다투는 소송에서 연달아 승소하면서 분쟁 전선을 넓혀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다소 안도할만한 판례가 나왔다는 평가다.
"과업지시서만으론 지휘·명령 인정 안 돼"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1부(재판장 정회일 부장판사)는 대보정보통신, 스마트비전, 아이트로닉스, 진우산전 등 도로공사의 용역업체 네 곳에 소속된 근로자들이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 근로자는 도로공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교통관리시스템, 터널교통관리시스템, 요금징수설비, 제한차량단속설비 등 정보통신시설을 유지·관리하는 업체들에 소속돼 근무해왔다. 도로공사는 자회사인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민영화한 2002년부터 정보통신시설 관리를 외부업체에 위탁해왔다. 2010년부터는 2~3년마다 공개입찰을 통해 지역별, 사업별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원고들은 이 같은 정보통신시설 관리 방식이 사실상 파견 근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 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업무를 해왔다”면서 “파견법에 따라 도로공사가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견법은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로 근무한 직원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도로공사가 교통관리시스템, 터널교통관리시스템, 터널무선중계통합시스템, 광통신망, 긴급전화, 구내통신 등에 대한 정기점검, 고장 수리, 장애 복구, 품질 관리를 과업대상으로 지정한 과업지시서를 용역업체들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도로공사 측은 “과업지시서는 용역업체들이 업무를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각 용역업체는 과업지시서 내용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계획을 세워 업무를 수행하고 직원들을 관리했다”고 반박했다.

법원에선 도로공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용역업체들은 독자적으로 점검계획을 짰고 관리할 시설별로 점검항목 및 절차에 관한 업무 매뉴얼도 상세하게 만들었다”면서 “과업대상을 기재한 과업지시서만으로 (도로공사가) 용역업체 근로자들을 상대로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용역업체 관리자들이 정기회의를 통해 업무현황과 계획서 작성, 인력관리 및 배치, 교육계획 등을 논의해 현장 팀원들에게 꾸준히 공지해온 사실과 출근부를 비치해 직원 출퇴근 현황을 직접 감독한 사실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도로공사에는 점검이나 수리 등 원고들의 업무에 필요한 작업을 공동으로 할 수 있는 부서나 인력이 없기 때문에 파견관계를 인정할만한 하나의 작업집단 역시 구성돼 있지 않은 것으로 봤다.
'열세' 놓였던 기업들, 다소 숨 돌리나
이번 판결로 그동안 불법파견 분쟁에서 열세를 보였던 기업들이 다소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법원에선 하청 근로자의 불법 파견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포스코에 “광양제철소 협력업체 직원 59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이어 올해 4월엔 삼표시멘트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파견 근로자로 인정했다. 삼표시멘트 재판에선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 정직원으로 일했으면 더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산정하는 기간을 10년까지 잡을 수 있다는 판례가 나왔다. 지난 7월엔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업체 직원들도 파견 상태로 인정한 1심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한 노동담당 변호사는 “제조업 2차 협력업체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업종 근로자까지 불법 파견 소송전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주목할만한 판례가 나왔다”며 “불법 파견 분쟁의 전선이 확대되는 흐름에 조금은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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