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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안목 뛰어난 수집가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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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런던 거리의 노점상이었다. 1969년 피터 해링턴은 첼시 골동품시장 가판대에서 희귀 서적을 사들이고 되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발한 ‘피터해링턴 레어북스’는 영국 대표 초판·희귀본 전문서점으로 커졌다. 두 개의 런던 매장과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약 20억원의 가치를 지닌 17세기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폴리오(이절판: 인쇄 전지를 한 번 접어 책으로 엮은 대형판)부터 해리포터 시리즈 초판까지 장서 수만 권을 보유하고 있다.

아버지 피터 해링턴에 이어 2000년부터 서점을 이끌고 있는 폼 해링턴 대표는 다음달 ‘프리즈 서울 2023’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처음 방문한다. 3일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그를 서면 인터뷰했다.

폼 해링턴 대표는 “수년간 런던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여해왔다”며 “올해 프리즈 서울에 처음 참가하기로 한 건 아시아의 안목 있는 수집가들과 마주할 기회가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터해링턴 레어북스에는 아시아 출판물 전공자가 있어 영어로 출판된 고서적만큼이나 아시아 서적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터해링턴 레어북스는 이번 프리즈 서울을 통해 동아시아 희귀 서적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대표적인 게 11세기 고려에서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본 불경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0과 일본에서 14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경 <대반야바라밀다경> 권48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0은 120권으로 이뤄진 <대방광불화엄경소> 중 일부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화엄종의 대표 경전으로, 당나라 승려 징관이 <대방광불화엄경>에 단 주석을 송나라 승려 정원이 정리한 것이다. 제목에 붙은 ‘소(疏)’는 불교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경(經·경전)이나 그 가르침을 연구한 논(論·논문)에 단 주석을 뜻한다.

이 책이 고려에서 인쇄된 건 승려들이 국경을 넘어 교류했기 때문이다. 당시 송나라에서 유학한 고려 승려 의천은 항저우의 각수들에게 목판 제작을 의뢰했다. 이후 이 목판이 고려로 전달되자 닥종이에 글자를 찍은 뒤 병풍처럼 일정한 폭으로 접히는 책으로 제작했다. 조선시대에 이 목판을 일본에 하사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48, 64, 83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2004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됐다. 동아대박물관이 소장 중인 권88은 지난해 말 보물이 됐다.

폼 해링턴 대표는 “이 책은 동아시아 전역에 불교 사상이 퍼지는 데 인쇄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며 “선명하게 인쇄된 글자를 통해 한국 고유 닥종이의 특성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지는 남색으로 염색된 종이이고 제목은 금박으로 찍혀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진위 여부, 목판이 인쇄된 시점 등에 따라 가치는 달라질 수 있는데, 이는 실물을 확인해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피터해링턴 레어북스는 1632년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두 번째 폴리오도 서울로 가져온다. 이 책에는 셰익스피어를 위한 시가 익명으로 실렸는데, 학계는 이 시를 쓴 사람이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 대표 시인 존 밀턴일 것으로 추정한다. 가격은 46만파운드(약 7억7000만원)로 책정했다.

오래된 책이라고 무조건 예술품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예술품이라고 늘 옛날 옛적 책인 건 아니다. 폼 해링턴 대표는 “희귀품이라고 하면 흔히 고미술품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릴 때 공부하고 사랑한 책은 어른들의 수집품이 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발달과 독서인구 감소로 책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 읽는 사람이 적어질수록 귀한 책은 더 귀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태블릿 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책을 읽으며 자란 젊은 수집가들에게는 종이책 초판본이 더 희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책이 더 적게 인쇄된다는 건 살아남는 책은 더 희귀해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종이책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냐고요?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물질적인 대상으로 평가합니다. 출판사는 종이책을 구매해야 할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아름답게 제작된 책, 특별한 내용이 포함된 한정판 등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이런 책들은 ‘내일의 수집품’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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