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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핵폭탄 폐허에서도 자라는 송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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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에 처음으로 다시 등장한 생물은 송이버섯이었다. 중국 대약진운동, 일본 메이지유신으로 곳곳이 민둥산이 됐을 때도 송이는 창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연구기관들이 수백만엔을 들여 최적의 생육조건을 조성해도 결국 해내지 못한 게 송이버섯 인공 재배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손길에도 길들지 않던 송이가 역설적으로 인간이 자행한 파괴와 오염으로 번성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세계 끝의 버섯> 한국어판은 세계에서 가장 귀한 버섯으로 통하는 송이의 상품 사슬을 총망라한 책이다. 미국 오리건에서 채집된 송이가 선별·분류·운송을 거쳐 일본 도쿄 경매시장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저자가 7년 동안 인터뷰한 송이 채집업자와 중간업자들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멀어진 사람이다. 이들은 어떻게 다시 자본주의의 중심에 들어오는가.

무역이나 유통에 관한 책으로 보이지만 굳이 따지면 문화인류학 서적에 가깝다. 송이버섯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현대인이 ‘자본주의의 폐허’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가 세계적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송이가 “오늘날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갈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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