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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트라피구라, 직원 1인 당 35억씩 줬다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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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공급망 격변
돈벼락 맞은 원자재 트레이딩 업계
트라피구라 직원들, 30년 역사 최고액 받아


상반기에 1100여명의 직원에게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를 지급한 기업이 나왔다. 1인당 평균 270만달러(약 35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서류상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스위스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 트라피구라는 반기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직원들에게 배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자원 공급망의 격변으로 석유 트레이딩 부문이 돈벼락을 맞은 덕분이다. 석유 거래 시장을 장악한 원자재 중개 기업과 서방 석유 메이저들은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이벤트를 기회로 삼아 과감한 베팅과 매점매석 등으로 손쉽게 큰돈을 벌고 있다.

트라피구라는 전 세계 156개국에 진출해 석유와 천연가스, 니켈·구리 등 비철금속까지 다양한 원자재를 중개한다. 광산이나 해운·발전회사 등의 지분도 적극적으로 확보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작년엔 한국에서 2000여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자사주를 매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석유 투기 거래로 현대차보다 더 많이 벌어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트라피구라는 지난 3월로 끝난 6개월간의 회계연도 반기에 55억달러(약 7조2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이 가운데 30억달러를 직원들에게 배당한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글로벌 혼란의 결과로 순이익이 107%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지분을 가진 기업인 트라피구라의 이번 배당금은 창사후 30년 역사상 최고액이다. 올 초 인도 기업 TMT메탈, UD트레이딩 그룹 등과의 니켈 거래에서 초대형 사기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한 법적 조치로 5억9000만 달러를 상각하고도 이 같은 실적을 냈다.

제레미 위어 트라피구라의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성명을 통해 "상품을 생산지에서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우리 핵심 비즈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수요가 많아졌다"며 "우리 팀은 최근 몇 년간의 혼란 이후 공급망 재구성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랑했다.

트라피구라의 순이익 규모는 7만2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현대차가 상반기에 전세계에서 자동차 208만대를 만들어 판매해 벌어들인 순이익(6조766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대차의 상반기 순이익 역시 트라피구라와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였다. 트라피구라는 전세계 자회사·관계사 직원까지 합치면 직원 수가 1만3000명가량이지만, 1100여명의 핵심 트레이더들이 수익의 대부분을 창출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의 주도로 러시아산 원유 수출 제재가 이뤄지면서 유가(서부텍사스산원유 기준)는 배럴 당 116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요동쳤다. 러시아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유럽은 미국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석유 공급선을 찾아 나섰고,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찾아나서는 등 공급망도 급변했다. 그러는 동안 트라피구라는 싸게 산 원유를 비싸게 팔아 수익을 냈다는 얘기다.

트레이딩 기업들은 지난해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다. 트라피구라 뿐 아니라 업계 1위 비톨은 지난해 150억달러(약 20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서방 석유 메이저 기업들도 차익 거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집계에 따르면 쉘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프랑스 토탈에너지는 작년에 석유와 가스, 전력 트레이딩 부문에서 총 37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한 뒤 대규모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미국과 영국 등의 정치권에선 석유·가스 회사와 중개기업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영국 야당 자유민주당 당수인 에드 데이비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불행으로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직원들 실제 보수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
트라피구라 등 석유 중개업체들의 순이익은 수수료 등 인건비를 제하고 나온 숫자다. 원자재 트레이더들은 거래액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또는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몇몇 고위직 트레이더들은 지난해 3500만달러를 받은 JP모간 제이미 다이먼 회장 뺨치는 보수를 받아 갔을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트라피구라는 비톨과 함께 러시아산 원유와 정유 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한 업체 중 하나였다. 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어딘가에서 석유를 구해 러시아산이 아닌 원유를 필요로 하는 구매자에게 프리미엄을 받고 공급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472억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적자는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인한 영향이 컸고 이 돈의 상당 부분은 트레이딩 업체와 석유 메이저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원유를 구했는지는 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FT가 원자재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트라피구라와 비톨 등은 여전히 러시아산 원유를 취급하고 있었다. 두바이를 거점으로 다수의 의문스러운 신생 회사들도 설립됐다. 그러나 트레이딩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오히려 글로벌 유가 안정을 위해 러시아 원유를 취급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들은 '합법적인 한도' 안에서 거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레이딩 기업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은 이들의 과거 때문이다. 원자재 중개업체들은 냉전 시절엔 공산권 국가와도 거리낌 없이 거래했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반군 세력에게도 정유 제품을 판매하는 등 돈이 되면 누구와도 거래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트라피구라 역시 이 같은 옛 원자재 중개업체 트레이더들이 독립해 설립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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