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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술 내놔도 평가받는데만 5년…못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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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만든 의료기기가 일선 병원에서 사용되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평가 기간이 5년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데스밸리’를 도저히 넘을 수 없습니다.”

의료 분야 스타트업 업계에선 ‘신의료기기’에 관한 규제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제조해도 신의료기술평가 규제를 넘지 못해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것. 스타트업이 만든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로 ‘수가’가 발생하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평가 기간이 5년 넘게 걸린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제풀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신청 대상’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6월 접수한 251개 규제 관련 애로에는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 장벽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중기중앙회는 이 중 단순 민원성 건의 등을 제외한 ‘중기 킬러규제 100건’을 선정했다.

규제의 사슬은 중소기업 특화 업종에도 촘촘하게 파고들어 있었다. 슬립테크 기기를 생산하는 서울의 한 업체는 첨단기술 제품과 일반 온수매트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이 회사는 수면 측정 후 발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온도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제품을 생산하는데 일괄적으로 온수매트 제품으로 분류된 탓에 원격제어 기능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업종 특성을 적용하지 않은 안전 규제는 도리어 중기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경기 안산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는 공장 내 방화벽 설치 기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연면적 1000㎡ 이상인 건축물의 경우 바닥 면적의 합계가 1000㎡가 넘지 않도록 구획해 방화벽을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공장 내부에 설치된 방화벽은 물류 이동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각종 설비의 설치와 가동에도 제약이 많다. 이 업체 대표는 “너무 많은 방화벽으로 시야가 가려지면서 오히려 화재 현장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는 위험도 크다”며 “화재 발생 가능성이 낮은 불연성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엔 방화벽 설치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킬러 규제는 중기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부산의 한 화학플랜트 기계 제조업체 대표는 안전관리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현재 하도급 100억원, 원도급 50억원 이상 공사인 경우 안전관리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모집 공고를 올려도 다들 큰 건설회사만 가려고 할 뿐 전문건설업체에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건설업은 현장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안전관리사 자격증을 금방 땄다고 해서 바로 전문가로 활동하기는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사고를 예방하려면 현장 경험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안전관리자의 공급난이 해소될 때까지만이라도 자격을 확대해 이미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안전관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규제가 거미줄처럼 퍼진 만큼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규제개혁 움직임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0개 기업(대기업 250곳, 중소기업 250곳)을 상대로 규제개혁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규제개혁 체감도가 95.9에 불과했다. 규제개혁 체감도는 100을 기준으로 초과하면 만족, 미만이면 불만족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규제의 신설·강화(25.8%) △핵심 규제 개선 미흡(24.7%)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19.1%) △공무원의 개혁 의지 부족(18.0%) 등을 불만족 이유로 꼽았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에 시간을 끌수록 기업들엔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친다”며 “규제 완화는 재정 투입에 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인 만큼 공무원의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기를 옭아매는 킬러 규제가 구체적으로 지목된 만큼 빠른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내용의 입법을 위해 중소기업계와 적극 소통하고 올해 입법을 완료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강경주/오유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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