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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공공요금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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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가스, 버스, 지하철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서민 부담을 우려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막아 오던 요금 인상이 한계에 부딪혀 공공요금이 한꺼번에 뛰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 서울 지하철 요금도 오는 10월 7일부터 150원 오릅니다. 내년 하반기에 150원이 더 오를 예정이고요.

전기요금은 한국전력(한전)의 엄청난 적자가 핫 이슈입니다. 한전은 올 2분기에 2조 원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해 2021년 2분기 이후 아홉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이후 누적 적자 규모가 47조5000억 원에 달해 매일 40억 원이 넘는 이자를 물고 있습니다. 한국가스공사도 사실상 적자 상태입니다.

공공요금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없습니다. 한전 등 공기업의 적자는 해당 기업의 막대한 부채로 쌓이게 되고,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지난 정부는 이를 뻔히 알면서도 공공요금 인상을 계속 미뤘습니다. 선거 등을 의식한 정치 논리로 공공요금을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공요금을 생산원가보다 낮게 책정하는 이유와 공공기관 부채 문제에 대해 살펴봅시다. 한전 사례를 통해 “전기 요금은 정치 요금”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 봅시다.
공공요금을 원가 이하로 통제하면
국민 부담이 나중엔 훨씬 커집니다

공공요금은 ‘공공서비스 기업(public utilities)이 생산·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결정하는 가격’입니다. 한국전력의 전기 요금, 한국가스공사의 가스 요금,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대중교통 요금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공요금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공공요금을 결정하는 원리가 몇 가지 있습니다. 서비스 원가주의·서비스 가치주의·사회적 원리주의 등인데요, 서비스 원가주의는 공공서비스 이용자가 그 서비스의 생산·공급에 소요된 원가를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공공요금 결정에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치주의는 서비스 생산 비용에 관계없이 이용자가 인정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사회적 원리주의는 이용자의 요금 부담 능력을 기준으로 요금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유명무실한 총괄원가제

우리나라는 공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재화의 가격을 ‘총괄원가제’를 기준으로 정합니다. 총괄원가제는 서비스 원가주의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해당 사업(전기, 가스, 수도, 버스, 지하철 등)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용자들에게 받는 요금이 총괄원가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총괄원가는 적정 원가와 적정 투자 보수를 합친 것입니다. 적정 원가는 인건비, 유류비, 감가상각비 등을 토대로 산정합니다. 적정 투자 보수는 이용자에게 서비스나 재화를 공급하는 데 드는 총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액을 가리킵니다. 결국 총괄원가는 해당 사업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금액인 셈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공공요금이 총괄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공공요금 결정 과정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손해를 봐야 합니다.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은 손해를 메우려고 회사채를 발행해 빚을 지게 되고, 수돗물을 공급하는 지자체는 시민 세금으로 수도 사업의 적자를 보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총괄원가제는 일본과 비교하면 그 문제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총괄원가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방상수도의 경우 1년 단위로 총괄원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전년도에 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단순히 현행 시설을 운영하기만 했다면 올해는 노후 시설 개선을 위한 비용을 총괄원가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일본은 3~5년의 회계 기간을 감안해 총괄원가를 산정합니다. 따라서 노후 시설 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죠. 총괄원가제라는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요금 통제가 공공기관 부채 키워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는 해당 공공기관의 비효율적 경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서민 부담 완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공요금을 총괄원가에 미치지 못하게 만드는 ‘요금 통제’도 부채 문제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30개 공기업의 재무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요금 통제를 많이 받을수록 부채비율과 부채증가율이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료비 연동제’가 대표적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1월 도입했는데요, 전기요금을 결정할 때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 상승분을 감안하는 제도입니다. 그해 국제 유가가 치솟았지만, 정부는 연료비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사실상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연료비 연동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죠. 정부는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인 만큼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자율성 이론’은 공공기관이 성과를 높이려면 정부로부터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공공요금 통제는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축소시킵니다. 공공기관이 공공서비스의 생산원가(총괄원가)를 충당할 수 있는 이용 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고, 국민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서비스 원가주의를 정리해보자.

2. 총괄원가제가 유명무실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3. 공공요금 통제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기요금은 정치적 계산 말고
시장 원리로 결정해야 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민영 전기회사의 비싼 전기요금 문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이때 발명가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던 새뮤얼 인설이 등장해 ‘규제 협정(regulatory compact)’을 제안했습니다. 인설은 지자체에게 낮은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며 자신의 전기회사에 지역 독점사업권을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는 전기회사들의 분산된 전력망을 단일 공급망으로 통합해 전기 공급 단가를 낮췄고, 미국 전역에 걸쳐 전력 산업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새뮤얼 인설이 주장한 규제 협정은 정부(또는 지자체)가 단일 기업에 특정 지역의 독점사업권을 보장하는 대신 엄격한 요금 규제를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특정 기업에 독점사업권을 부여해 공급 단가를 낮춰 보편적 공급을 달성하려는 규제 협정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공서비스 기업(public utilities), 즉 유틸리티 기업에 대한 요금 규제의 기초로 활용됐습니다. 이를 고전적 유틸리티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전력(한전)의 비즈니스 모델도 고전적 유틸리티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

한전은 전기사업법상 전기 판매 사업자로서 발전 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해 전기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전기 판매 사업은 한전에게만 부여된 독점사업입니다. 그러나 유틸리티 기업인 한전은 새뮤얼 인설의 전기회사들처럼 민영기업이 아닙니다. 국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진 선임권을 행사하는 국영기업이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상 공기업입니다.

한전은 어떻게 국영기업이 됐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는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입니다. 조선 황실이 전액 출자했지만 민간 회사로 설립됐고, 미국 사업가 콜브란이 경영권을 행사했습니다. 1930년대 초엔 한반도 전역에 63개 전기회사가 존재했는데, 대부분 일본 재벌이 설립한 민영기업이었습니다. 해방 후 일본인들의 전기회사 주식이 남한 정부에 귀속되면서 조선전업·경성전기·남선전기 등 전기 3사는 정부가 경영진을 임명하는 국영기업이 됐습니다.

당시 전기요금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했고, 국회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를 이유로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을 강요했습니다. 이후 한전이 설립되면서 전기 3사는 한전으로 통합됐으며, 전기요금 통제는 계속됐습니다.

위험한 한전 부채 문제

한전은 국영기업이라서 대규모 발전소 건설 등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점과 달리 국영기업이라는 속성은 폐해도 많습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전의 경영진은 일반 주주가 아닌 정부가 임명합니다. 경영진이 받는 보수도 경영 실적보다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좌우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전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기요금 인상도 사실상 정부가 결정합니다.

국영기업이 아니라면 전기요금은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그것이 전기요금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에너지 소비를 줄이라는 경보를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전기요금을 결정하면 이런 경보는 울리지 않습니다.

한전의 부채 문제도 국영기업이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한전이 민간기업이라면 회사채를 발행해 적자를 메우는 일이 현재와 같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한전의 부채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우리나라 전력 산업 전체가 크게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발전사들은 한전에서 거래 대금을 지급받기 어려워져 전기를 생산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설사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유일한 거래처인 한전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를 구매하거나 연료 구매 자금을 금융시장에서 조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한전을 국영기업으로 간주하여 전기요금에 대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이 같은 폐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전기요금은 정치적 계산이 아닌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로 결정해야 합니다.
NIE 포인트
1. 규제 협정을 설명해 보자.

2. 우리나라 전력 산업의 역사를 정리해 보자.

3. 한전이 가진 국영기업 속성의 폐해를 생각해 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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