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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짜리 法에 '등'만 1629개…중대재해 예방지침에 속터지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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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로펌 노동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변호사는 매주 월요일이 괴롭다. 고객사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팀 회의가 한 번 시작되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이사의 형사처벌 기준이 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법안 한 문장, 한 문장이 ‘등’으로 뒤덮여 있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모호한 법령에 업계 '골머리'
의무 위반 시 사업주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모호해 기업과 로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업주의 처벌을 막기 위해 예방책을 내놓으려고 해도 구체적 행위 자체가 모호하게 적시돼 있어서다. 특히 시행규칙은 포괄적인 법에서 위임받아 내용을 구체화하는 기능을 하는데도 내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2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이 고용노동부가 만든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분석한 결과 12장짜리 법령에 ‘등’이 1629개 쓰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673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다. 세부적으로 어떤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지는 고용노동부령인 ‘산업안전보건 규칙’에 위임하고 있다. 실무자가 해당 규칙을 위반하면 사업주가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업무상 재해 보상 절차와 기준이 담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에는 등이 160개, 관련 업계에서 모호한 기준으로 지적받는 13장짜리 주택법 시행규칙에는 131개 쓰였다. 다른 법령과 비교했을 때 모호한 표현이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조사 나오면 '무소불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감독관이 조사라도 나오면 해당 기업 현장은 비상이 걸린다. 모호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조사관이 특정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산업안전보건 규칙 등을 어긴 사업장을 고용노동부가 고발한 건수는 31건이다. 건설 및 제조업이 22건으로 70.9%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조사관이 현장 조사를 나와 ’사업주는 구내 운반차에 피견인차를 연결하는 경우에는 적합한 연결장치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규칙 제185조를 지적했었다”며 "적합한 연결장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고민이 많다. 모호한 법령의 내용을 추측하면서 다양한 예방책을 마련하다 보니 고객사의 불필요한 지출이 커져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제88조가 가장 모호한 규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동력으로 작동되는 기계에 스위치·클러치 및 벨트이동장치 등 동력차단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연속하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기계로서 공통의 동력차단장치가 있거나 공정 도중에 인력에 의한 원재료의 공급과 인출 등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규칙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등 동력차단장치’라고 하면 어떤 장치까지 법령상 허용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며 ”‘필요 없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법령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관련 법령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주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입건 및 처벌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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