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학회에서 6대 그룹의 경영경제 연구조직 수장들을 불러 한국의 산업생태계 문제에 대해 토의했다. 그런데 그 모임 자체가 우리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만약 30년 전에 ‘같은’ 모임을 했으면 누가 왔을까? ‘같은’ 멤버들이 나왔을 것이다. 미국이라면 어떨까? 30년 전에는 IBM, GM, GE 같은 회사들이 왔을 것이고 지금은 아마존, 구글, 애플, 엔비디아 같은 회사들이 왔을 테다. 멤버들은 전원 교체됐고 그나마 절반은 30년 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회사들이다.
바로 이거다. 미국은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는 신생 회사들을 펑펑 쏟아냈지만 우리는 하나도 못 만들었다는 말이다. 살아 펄떡거리는 산업생태계를 가졌으니 많은 문제에도 미국이 잘나갈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 산업생태계는 말라버린 ‘건어물’에 가깝다고 하겠다. 물론 100년 넘은 기업들이 선두를 꽉 쥐고 있는 일본은 더하다. 새로운 선수를 못 만들어내니 침체가 계속될 수밖에. 다들 인구 감소 때문에 일본처럼 될까 걱정하시는데 그들처럼 안 하는 데에 해결책이 있다. 최근엔 일본도 깨달았는지 정부가 나서서 스타트업 투자를 10년 전 대비 10배나 늘렸고 불황기라는 올해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생로병사의 원리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기술이나 환경 변화로 인한 업종의 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역동성이 떨어져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새로운 강자들은 ‘선수 교체’의 역동성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밀려나지 않으려고 별의별 대책을 내놨다. 구글은 근무시간의 20%를 업무와 관련 없는 창의적인 ‘딴짓’에 사용하는 규칙을 세웠다. 또 구글X라는 회사를 만들어 ‘이익에 신경 쓰지 말고 한방에 달까지 도달하는 문샷을 한다’는 시도까지 했었다. 두려워서 한 짓이다. 그래서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구글X가 인상적인 뭔가를 내놨는가? 전혀 없다! 천하의 구글도 대기업이 되고 나서 역동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게 생로병사의 ‘공평’한 법칙이다.
구글은 결국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내부에서 안 되면 ‘혁신을 외부에서 사들이자’는 전략이다. 과거에 사내 전산실에서 움켜쥐고 있던 역할을 전문기업에 외주를 줬듯이 혁신 자체를 스타트업 생태계에 외주를 주는 전략이다. 그렇게 구글은 유튜브, 딥마인드, 안드로이드를 사들였고 효과가 대단했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마이크로소프트는 링크트인을 인수했고 최근 오픈AI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인공지능(AI) 경쟁의 판도 자체를 엎었다. 그리고 보유한 자금, 노하우, 인프라, 네트워크를 집중해 그 스타트업들을 폭발적으로 키웠다.
상황이 이쯤 되니 기술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업이 크게 늘어났다. 적당한 규모의 유효성만 입증해내면 대기업이 투자해 사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켜준 사례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스타트업에서 30년 뒤 6대 기업 모임에 불려오는 회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펄떡거림’이 미국의 경쟁력이다. 이제 빅테크들은 아예 기업 내 벤처캐피털(CVC)을 만들어 스타트업의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투자하고 육성한다. 이제는 CVC의 투자 자금이 전체 벤처 투자 자금의 절반에 달한다.
그것이 대기업의 역량과 스타트업의 역동성을 결합해 혁신을 선도하는 ‘총력전 생태계’라는 신전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2021년 말까지 지주회사의 CVC를 금지했었다. 국가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있듯이 경제의 미래는 스타트업에 있다는 걸 몰랐던 걸까? 아니면 제대로 된 스타트업 하나 키우려면 온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걸 몰랐던 것일까?
지금처럼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 선수 교체의 주기는 훨씬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수명 연장의 꿈을 해결하는 방법은 빅테크들이 선택한 그 길이 유효하다. 혁신적이라는 구글도 몸부림치는데 기회의 문이 열렸음에도 외부 생태계에 주목하지 않는 기업들과 올해 관련 예산을 듬뿍 삭감한 정부, 이래서야 우리가 계속 ‘안녕’하실 수 있을까? 갈수록 분명해지는 건 기업이 커버리면 역동적인 스타트업을 이기기 어려워지고, 우리 경제의 미래는 그런 스타트업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경영학회가 이 이슈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서니 그나마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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