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서 ‘신좌파’의 불씨가 피어오른 것은 2016년.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뻗친 백발에 싸구려 정장을 입은 고루한 인상을 풍겼지만, 고집스럽게 ‘미국식 사회주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많은 비백인, 여성, 청년이 열광했다.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2016년은 힐러리 클린턴, 2020년은 조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렇게 신좌파 운동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샌더스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의 불씨를 이어받은 젊은 신좌파 정치 세력이 몸집을 키워갔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2018년 하원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미국이 불타오른다>는 이처럼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의 신좌파 운동이 세를 불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레이나 립시츠가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엮어 미국 젊은이들이 좌경화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신좌파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환경운동과 이민자 권리, 페미니즘, 노동운동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칠게 정리하자면 소수의 권력과 부를 다수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의료보험과 무상교육, 최저임금 인상에 쓰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신좌파 이념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못 살고, 다음 세대만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보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다. 지나치게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시달리는 사람들, 주류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도 신좌파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신좌파 지지자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줘야 할 민주당이 기득권과 밀착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신좌파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클린턴이 ‘대침체가 낳은, 부모 집 지하실에 얹혀사는 이들’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권력을 잡았을 때 과연 통치할 능력이 있는지, 지나치게 선거 의존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비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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