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마을의 공동주택 '무코리타'. 청년 야마다 다케시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짐 정리를 마치고 여유를 즐기려는 찰나, 이웃 주민이 문을 두드리곤 다짜고짜 목욕탕을 쓰게 해달라고 조른다.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그렇게 첫날부터 수포가 된다.
사기 전과자,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읜 집주인,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중년 남성까지. 23일 개봉하는 '강변의 무코리타'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 '힐링 영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고통은 이웃끼리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 '소확행(小確幸)'을 나누며 치유된다.
영화는 '카모메 식당'(2007)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등 잔잔한 작품들을 연출해온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영화"라고 평가받았다. '데스노트' 시리즈의 '엘(L)' 역할로 한국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마츠야마 켄이치가 주연을 맡았다.
작품의 주제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미니멀리즘'과 맞닿아 있다. 무코리타 주택은 50년도 더 된 허름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텃밭을 꾸려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갓 지어진 흰 쌀밥을 먹는 데 만족한다. 이웃 '시마다'의 대사 "사소한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처럼 말이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가난이 아닌 죽음이다. 어린 시절 부모한테 버림받은 야마다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죽은 이를 위한 묘비석을 방문 판매하는 '미조구치'는 역설적으로 자살을 고민한다. 집주인 '미나미'는 남편의 유골에 키스하고 품에 지니는 방식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죽은 이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웃 간의 연대'가 영화가 건네는 해답 중 하나다. 이는 '산 사람'들의 행위인 식사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처음에 즉석조리 라면과 도시락에 불과했던 야마다의 식단에는 주변에서 건넨 신선한 채소가 더해진다. 혼자였던 그의 식탁에는 이웃들의 숟가락이 하나둘 늘어난다. 그렇게 야마다의 마음의 문도 서서히 열린다.
제목의 '무코리타(牟呼栗多)'는 불교의 시간 단위로 30분의 1일, 약 48분을 나타낸다. 노을빛으로 하늘이 물든,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시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을 상징하는 단어다.
크고 화려한 이미지나 서스펜스 가득한 줄거리를 담은 작품은 아니다. 여름철 강변의 무성한 녹음과 그 사이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 등 소박한 소재들을 영상미 있게 담아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위로의 메시지를 바라는 관객이 잔잔한 감동을 느낄만한 작품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