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에 대한 안전 점검이 시작도 전에 걸림돌을 만났다. 입주가 진행되지 않은 아파트는 그나마 낫지만 이미 입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검사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비용 부담을 두고 정부와 시공사가 마찰을 빚는 것도 문제다.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주 중 17개 광역 지자체와 공조해 민간아파트 무량판 구조 점검을 실시한다. 오는 10월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점검 대상은 2017년 이후 주거동, 지하 주차장 등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293개 단지다. 이 중에서 이미 입주를 마친 곳은 188개 단지로 전체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점검'이라고 했지만, 입주민 사이에서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무량판 구조=부실 공사'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일부 공공 아파트에 대한 점검 이후 철근누락 등이 알려지고 보강공사가 실시되고 있다. 더군다나 등기까지 완료해 입주해 살고 있는 아파트다보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아현동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이모씨는 "온라인커뮤니티에 나온 '순살아파트' 명단을 보니 우리집도 무량판 구조가 일부 적용됐더라"며 "혹시라도 문제가 발견되기라도 하면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무량판 구조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검사를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안전이 시급하지만 브랜드 가치 훼손에 따른 추후 집값 하락 등도 집주인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다. 검사가 진행되는 것만으로도 입주민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산다는 입주민 김모씨(27)는 "안전을 위해서 명단을 공개하고 빨리 점검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부실 시공 단지로 지목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앞으로 계획이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불안감이 확산된 만큼 체계적인 보상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근식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실시공 정황이 발견되면 보강 공사 비용 부담은 물론, 입주민들을 위한 보상 체제 마련이 시급하다"며 "현재 무량판 구조에 대한 공포심만 확산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해당 사실이 전해진 이후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를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정확치 않은 임시 단지 명단도 빠르게 퍼졌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퍼지자 국토부는 안전 점검 대상이 되는 민간아파트 단지명을 비공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추후 재산권 침해 문제로 민간아파트 안전 점검 대상 명단은 공개할 계획이 없다"며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시공사와 입주민만 공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 드는 비용을 누가 떠안느냐도 쟁점이다. 정부는 시공사가 비용을 부담해 올해 말까지 보수·보강을 완료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 관계자는 "비용 부담은 시공사 부담의 법적 근거가 있다"면서도 "검사 비용 관련 논의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공사들은 '부당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먼저 무량판 구조를 적극적으로 권장해왔는데 뒷수습은 건설사에서 해야 하느냐"며 "시공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는 단지에 분양가를 더 높일 수 있는 혜택을 주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는 용적률의 10%를 올려주는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도 준다.
한편 앞으로 점검 대상이 될 아파트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지자체의 추가 보고로 대상은 57곳 증가한 350곳으로 집계됐다.
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