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과 현대자동차그룹,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앞다퉈 3000만원대 중저가 전기차 출시를 선언하고 나섰다. 보조금 축소와 금리 인상, 여전한 충전 부담 등으로 전기차 수요가 주춤해지면서다. 가장 큰 진입장벽인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스텔란티스 자회사인 시트로엥과 피아트는 내년 초 신형 전기차 e-C3와 판다 전기차 모델을 각각 출시한다. 가장 큰 특징은 ‘2만5000유로(약 3600만원) 미만’으로 책정할 가격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올 상반기 국내 판매량 상위 전기차 15종의 평균 구매 가격(7934만원)의 ‘반값 이하’ 수준이다.
시트로엥은 원가 절감을 위해 신차를 슬로바키아에서 생산하고, 피아트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유럽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항하려면 가격을 낮추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르노그룹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다치아 스프링을 유럽에서 2만800유로(약 3010만원)에 판매하며 점유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기세를 몰아 내년 2만5000유로 수준의 소형 전기차 르노 5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저가 전기차로 자국에서 테슬라를 누르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중국 BYD는 원가 절감을 위해 유럽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현대차·기아 등도 3000만원 안팎의 전기차를 줄줄이 내놓을 예정이다. 현대차는 내년, 기아는 올 하반기부터 경차 캐스퍼와 레이의 전기차 모델을 공개한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2000만원대까지 가격을 낮출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가격 낮춰야 산다"…전기차 경쟁 '2라운드'
KG모빌리티는 오는 9월 토레스 전기자동차 모델을 출시한다. 중국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이 모델은 1회 충전으로 433㎞를 달릴 수 있다. 가격은 최저 3000만원대(보조금 적용 시)로 낮추면서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산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소비자가 꺼린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테슬라가 국내에 출시한 중국산 모델Y 후륜구동(RWD)이 흥행하면서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지난달 LFP 배터리를 장착해 상하이에서 생산한 모델Y RWD를 국내에서 가격을 대폭 낮춰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동급 차량 기준으로 내연기관차 대비 30~40%가량 더 비싼 전기차 가격은 전기차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신기술을 먼저 경험해보려는 얼리어답터는 비싼 가격을 감수하면서 전기차를 샀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대다수 소비자는 내연기관차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전기차를 선뜻 택하기 어려워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국내 판매량 상위 전기차의 평균 구매가격은 6561만원이었는데 올 상반기엔 7934만원으로 21% 비싸졌다. 같은 기간 휘발유차 평균 구매가가 3734만원에서 3876만원으로 4% 오른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전기차 도입 초기 이 간극을 좁혀준 정부 보조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가격 낮추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3개월 전 소형 전기차 볼트의 단종을 선언했다가 결정을 번복했다. 프리미엄 전기차 중심의 현행 포트폴리오에서 최저 3000만원대(보조금 적용 시)인 볼트 생산을 중단하면 소비자를 붙잡아둘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고급화를 고집해온 미국 전기차업체 루시드도 최근 주요 모델 가격을 최대 11% 낮췄다.
전기차 가격 경쟁에 불을 붙인 테슬라는 추가 인하에 나섰다. 테슬라는 올 하반기 출시가 예상되는 모델3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중국에서 현재 가격(약 4200만원)보다 더 낮춰 약 3600만원대에 팔 것으로 예상된다. 임현진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 경쟁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 전쟁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배성수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