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주력 사업이던 스마트폰과 TV는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성장할 여지가 거의 없지만, 자동차 디스플레이 시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발전하며 자동차가 하나의 거대한 전자장치가 되면서다. 디스플레이의 크기는 커지고, 해상도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탑재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2027년엔 16조원 돌파
7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KIDA)에 따르면 2027년엔 세계 차량 디스플레이 시장이 126억3000만달러(약 16조3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시장은 지난해 88억6000만달러(약 11조4000억원) 규모를 기록했으나, 5년 사이에 42% 넘게 시장 크기가 증가한다는 예측이다.협회는 자동차의 전장화·자율주행화로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장 속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스플레이가 기존의 내비게이션에 더해 다양한 자율주행 정보를 표시해야 하고, 자동차 내에서 게임 및 영상 시청도 즐기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년(2017~2022년) 동안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은 연평균 4.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액정표시장치(LCD)와 중소형 패널 중심으로 시장이 구성된 영향이다. 반면 올해부터 2027년까지는 디스플레이가 대형화, 고해상도화하면서 OLED를 중심으로 매년 7.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층 OLED로 밝기 높여
LG디스플레이는 현재 세계 차량용 OLED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의하면 지난해 매출 기준 LG디스플레이 점유율은 51.7%다. 삼성디스플레이(41.2%)와 함께 양강 구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 기업인 BOE가 점유율 7.1%로 뒤따라오는 상황이다. LG디스플레이는 차별화 기술인 탠덤(Tandem) OLED를 앞세워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탠덤 OLED는 유기발광층을 2개 층으로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1개 층만 쌓는 기존 방식보다 휘도(화면 밝기)가 높고 수명도 길다는 점이 특징이다. LG디스플레이가 2019년 업계 최초로 이 기술을 활용해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올해부터는 유기발광 소자의 효율을 향상해 휘도와 수명을 더 개선하고, 소비전력도 기존 대비 약 40% 저감한 ‘2세대 탠덤 OLED’를 양산 중이다.
탠덤 OLED를 탄성이 높은 플라스틱 기판에 결합한 제품이 LG디스플레이의 차량용 P-OLED(플라스틱 OLED)다. 이 제품은 LCD에 비해 소비전력을 60% 줄였고, 무게는 80%나 저감했다. 무게를 줄이고 전력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전기차에 최적인 디스플레이다. 또 재질이 얇고 구부러지기 때문에 커브드(curved) 형태나 경계를 없앤 심리스(seamless) 베젤처럼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다.
P-OLED가 프리미엄 차량을 공략하는 제품이라면, 중저가형 차량용 OLED 제품도 있다. OLED의 기본적인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가격대를 낮춘 ‘ATO(Advanced Thin OLED)’다. 탠덤 OLED 기술을 고스란히 적용하면서도 P-OLED에서 사용하는 폴리이미드 기판을 유리 기판으로 대체했다. 유리 기판은 폴리이미드 기판보다 간단히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수율을 개선하고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일반 유리 기판을 사용하는 다른 OLED 제품과 비교해서는 20% 얇은 두께의 유리 기판을 사용해 날렵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구부러지고 투명한 화면까지
기업들은 새로운 폼팩터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투명한 OLED와 밀어서 화면을 넓힐 수 있는 슬라이더블 OLED를 적용한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투명 OLED는 유리창과 디스플레이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차량 내·외부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슬라이더블 OLED는 커다란 화면으로 고화질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삼성디스플레이는 화면이 구부러지는 벤더블 OLED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CES 2023에서는 ‘뉴 디지털 콕핏’이란 제목으로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제품에는 34인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는데, 좌우가 700R(휘어진 곡선을 이루는 원의 반지름)로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운전자에게 적합한 최적의 시청거리를 제공하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사 확보에도 속도를 낸다. LG디스플레이는 2020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모델에 이어 지난해부터 벤츠에 OLED 패널을 공급 중이다. 이 밖에도 독일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과 1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BMW, 아우디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고, 지난 4월에는 페라리와 OLED 패널 공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차량용 OLED…한국이 93% 독점, 중국은 추격 본격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이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장을 이끌 전망이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고도화할수록 완성차 업체들이 점차 높은 성능의 디스플레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OLED 패널 시장을 장악한 국내 기업들이 이런 흐름의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4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KIDA)에 따르면 차량용 OLED 패널 시장은 2027년 17.2%까지 그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OLED 패널은 전체 시장의 2.8%에 불과했다. 아직까지 시장 규모로는 LCD가 주류다. 지난해 기준 차량용 LCD 시장은 86억달러 규모로, 내수시장이 큰 중국이 38.4%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33.7%인 대만이 그 뒤를 잇고, 일본과 한국은 각각 14.8%, 13.1%로 경쟁국에 비해선 점유율이 낮은 상황이다.
하지만 OLED 패널 탑재량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업계가 점차 높은 수준의 디스플레이 성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OLED는 햇빛 반사를 뛰어넘는 밝기 수준(500~1000nits)을 가지고 있고, 영하 30도부터 영상 70도에 이르는 극한의 온도 변화 속에서도 작동에 영향이 없다. 고화질을 구현하면서도 자유롭게 디자인을 변형할 수 있기 때문에 밀어서 확장하는 ‘슬라이더블’ 형태나 투명한 화면 등 다양한 폼팩터가 가능하다. 기존의 LCD로는 이런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없다. 여기에다 전기차 수요가 확대되면서 배터리가 주 동력원이 되면 LCD보다 적은 전력을 사용하는 OLED가 적합하다.
차량용 디스플레이는 점차 커지는 추세다. 디스플레이가 커지면 패널 출하량도 늘어난다. 차량용 디스플레이 평균 크기는 2019년 7.5인치에서 2027년 9.5인치로 커질 전망이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정면에 있는 ‘센터 스택 디스플레이(center stack display)’가 특히 그렇다. 여기에 쓰이는 10인치 이상 패널의 출하량은 지난해 4749만 대에 그쳤으나 올해 5380만 대로 13.3% 증가할 전망이다.
OLED 전환이 이뤄지면 국내 기업이 대거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은 차량용 OLED 패널 시장에서 92.9%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7.1%는 중국이 점유하고 있어 향후 시장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양강 구도가 유지될 전망이다.
협회는 앞으로도 국내 기업이 차량용 OLED 패널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국의 추격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의 차량용 OLED 시장 점유율은 2021년 0%였으나 지난해 7.1%로 빠르게 확대됐다. LCD업계에서도 과거 선두를 차지하던 한국 기업들이 후발주자인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주도권을 내주게 된 점을 고려하면, OLED 시장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협회는 “향후 차량용 OLED 시장에서도 경쟁 심화 양상이 나타날지 주목해야 한다”며 “우리 기업은 프리미엄 자동차에서 요구하는 슬라이더블 등 새로운 형태의 OLED 기술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프리미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우위는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최예린 기자/도움말=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