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데이터 저장’을 넘어 ‘연산’까지 가능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D램의 속도·용량을 키운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멈추지 않고 중앙처리장치(CPU) 등 프로세서를 대체할 신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연산용 메모리 반도체가 대중화되면 CPU·그래픽처리장치(GPU)의 필요성이 줄어 빅테크 등 고객사에도 이익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용량 데이터 처리의 중요성이 계속 커져 데이터 저장·연산이 가능한 차세대 메모리가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사급 인력 적극 채용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세계 1,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사업부 안에 ‘신사업기획팀’을 뒀다. 100명에 가까운 반도체 개발자가 연산이 가능한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선행기술 개발 조직인 반도체연구소는 최근 ‘차세대 D램 개발’을 담당할 박사급 인력 채용에 나섰다. ‘차세대 고성능·저전력 트랜지스터 개발’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삼성의 두뇌’로 불리는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에서도 차세대 메모리용 신소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적극적이다. 2021년 미래기술연구원 내 RTC(Revolutionary Technology Center)를 출범시켰다. RTC는 △D램·낸드플래시 혁신제품 개발 △AI용 메모리 개발 △새로운 구조의 메모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IBM을 거쳐 국제반도체연구소인 IMEC에서 일했던 나명희 부사장이 센터장을 맡았다.
○데이터 막힘 뚫는 PIM 반도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연구개발 조직을 강화하고 인력을 확충하는 건 ‘프로세싱 인 메모리’, 즉 ‘PIM’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PIM은 메모리 반도체지만 연산까지 수행하는 게 특징이다.지금까지 반도체산업의 패러다임은 ‘폰 노이만’(프로세서와 메모리가 분리된 기존 컴퓨팅 구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메모리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CPU·GPU 등은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처리량이 폭증하고 메모리 반도체의 대역폭(데이터를 CPU 등으로 운반하는 능력)에 한계가 오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병목 현상’이 나타났다.
PIM 반도체는 CPU 등이 맡고 있는 연산 기능 일부를 메모리 반도체에 넣거나 근처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연산까지 하게 되면 프로세서의 부담을 덜어 전력 소모가 줄고 병목 현상도 감소한다.
○LLW D램 주목
일부 성과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AMD의 ‘MI-100’ GPU에 자체 개발한 ‘HBM-PIM’(HBM에 PIM 기능을 넣은 제품)을 적용해 성능을 시험했다. HBM-PIM이 연산까지 담당하게 되자 GPU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두 배 빨라졌고 전력 소모는 5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SK하이닉스는 지난해 그래픽 D램인 GDDR에 PIM을 적용한 ‘GDDR6-Aim’ 샘플을 공개했다. 이 샘플을 기기에 적용했을 때 과거보다 연산 속도가 16배 빨라졌다는 게 SK하이닉스 측 설명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PIM의 본격적인 적용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PIM이 고도화되면 CPU·GPU 역할의 상당수를 메모리가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성형 AI를 구동하게 될 개인용 기기(온디바이스)에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LLW D램’도 차세대 제품으로 꼽힌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LLW는 전력이 적게 들고 대역폭이 큰 게 특징”이라며 “2024년 말 양산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