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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기술 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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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배트는 나무 배트보다 스위트스폿이 훨씬 넓다. 프로야구에서는 홈런 양산으로 경기 질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나무 배트만 쓰고 있다. 골프대회에서는 반발계수 0.83 이하의 드라이버만 써야 한다. 반발계수는 드라이버 페이스면 스위트스폿 지점의 1m 높이에서 볼을 자유낙하했을 때 튀어 오르는 높이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고반발 ‘비공인’ 딱지가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다.

약물의 힘을 빌려 능력 이상의 경기력을 내는 부정행위를 약물 도핑이라고 하듯, 장비나 의류 등에 의한 경기력 향상을 기술 도핑이라고 부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의 이언 소프는 폴리우레탄 소재의 전신수영복을 처음으로 입고 나와 금메달 3개를 땄다. 전신수영복은 지구력 상승, 부력 상승, 물의 저항 감소, 균형 유지 등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2008년 스피도가 혁신적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그해 108개의 세계 신기록이 경신됐고, 2009년 경쟁사인 아레나가 가세하면서 로마 세계대회에서만 43개의 세계 기록이 쏟아졌다. 결국 2010년부터 착용이 금지됐다.

케냐의 전설적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1시간59분40초로 ‘마의 2시간 벽’을 깼을 때도 기술 도핑 논란이 일었다. 운동화 밑창에 탄소섬유를 넣어 스프링 효과를 내는 나이키 특수화를 신은 그는 흡사 내리막을 달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세계육상연맹은 밑창 두께, 탄소섬유 개수 제한과 함께 4개월 이상 시판되지 않은 신발 착용을 금지했다.

세계 프로골프계에 골프공 비거리 제한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골프협회(USG)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골프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며 골프공 비거리 제한을 추진하자, 미국프로골프(PGA)투어가 골프 흥행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스포츠 간에도 양면성이 있다. 스포츠의 기본 가치를 손상하는 과도한 기술 도핑은 제한할 수 있겠지만, 기술 활용으로 경기력 향상과 보는 즐거움을 배가한 순기능이 더 크다.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이끈 데도 AI(인공지능) 딥러닝과 3D(3차원)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한 훈련 비법이 숨어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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