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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장애인 기업 ‘정립전자’ 경영진 부실투자에 산하시설 보조금 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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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워커힐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나오는 서울 광진 구립 장애인복지관 정립회관. 매일 장애인 400명가량이 체육·문화 활동을 즐기러 오는 곳이다. 이용객들의 발이 돼줬던 셔틀버스 3대는 시동이 꺼진 채 주차장에 정차돼 있었다.

복지관 이용자들과 직원 등에 따르면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다니던 셔틀버스는 2주째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탁구동호회원 서미경 씨(54·서울 송파)는 “전동휠체어로도 이 비탈길을 올라오기 어려운데, 휠체어 타는 장애인들이 알아서 올 수 있겠냐”면서 “버스 운영이 중단되고 나서는 평소 수영하러 오던 어르신들이 안보인다”고 말했다. 이복용 탁구동호회장(58·서울 강동구)은 "주로 운동기구 교체하는 데 써 온 지정후원금 400만원가량도 압류 당한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운동시설을 운영하는 등 한국 장애인 지원의 한 축을 담당해 온 한국소아마비협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31일 서울시와 광진구 등에 따르면 협회가 운영하는 복지관과 보호시설 등은 최근 들어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협회 산하기관으로 국내 최초 장애인기업인 정립전자가 코로나19 기간에 무리하게 시작한 마스크 생산업이 실패하면서 협회에 들어오는 수십억원의 운영자금을 압류당한 것이 원인이다.

중증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직원 월급과 각종 지원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하루 400명가량이 이용하던 장애인 체육 및 문화공간인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정립회관은 2주 전부터 대형버스 3대 순환 운영을 중단해 다른 이동수단이 없는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없게 됐다. 수영 강좌 등 일부 프로그램도 당분간 안 열기로 했다.

문제의 시작은 소아마비협회 전 경영진의 투자 실패다. 정립전자는 1989년 설립돼 한때 이어폰 등을 삼성전자에도 납품했다. 2010년 서울시가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뽑은 후엔 해마다 9억원씩 보조금도 받았다.

그러나 납품처가 점차 줄어들어 어려움이 커졌고, 정립전자 원장과 직원들이 349억원어치 자금을 빼돌리는 사고도 일어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에 마스크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했다 40억원이 넘는 빚만 지고 실패했다. 분당 300장을 생산하는 마스크 생산라인 10개를 설치했지만 불량 기계를 들여와 인증을 받지 못했고, 결국 생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작년 5월부터는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정립전자는 오는 9월께 폐업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밟는 중이다.


정립전자의 채권자들은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협회 산하시설의 계좌를 비롯해 운영자금 23억원가량을 압류하고 9억원을 추심했다. 기존 이사진과 법인 대표는 지난해 물러나고, 지금은 비상대책위원회 운영체제다. 이계원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은 “산하시설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부채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다”면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산하 기관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만 비대위의 결정에 반발하는 기관장과 실무진에 대한 직위해제 등이 잇따르면서 내부 갈등은 한층 커졌다.

직원 연대는 “서울시 보조금과 체육동호회 후원금을 받는 통장도 압류된 상황”이라며 “사회복지사업법에 다르면 보조금은 압류 대상이 아닌데도, 비대위가 압류를 방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와 광진구청이 협회 이사진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정상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하는 중이다.

보조금을 주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해 경영컨설팅을 한 데 이어 협회에 부동산 일부를 처분해서 돈을 마련하라고 한 상태다. 엄기숙 서울시 장애인권익보장팀장은 “보조금이 부채 상환에 쓰이지 않도록 지켜볼 계획이며 혹시라도 횡령 사고가 적발될 경우에는 법원에 압류 범위 변경 신청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법인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답답한 것은 협회를 통해 서비스를 받아 온 장애인들이다. 한 정립회관 이용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마련된 자금을 엉뚱한 데 소진하고 대책 없이 서비스를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해서 답답하다”며 “정부든 서울시든 개입해서 빨리 정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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