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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게 인간의 본능? 천만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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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민족과 국가의 관점에서 역사를 배운다. 때때로 나라 이름은 바뀌지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곳에 살며, 같은 정체성을 공유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우리의 집’이고, 이곳에 오는 이주민은 ‘경계해야 할 타인’이다.

<이주하는 인류>는 이런 관점에 반기를 든다. “한곳에서 머물며 생활하는 것은 비교적 현대적인 현상이며 4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유목 생활을 했다.” 국경이 그어지고 여권이 만들어진 것은 훨씬 더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다.

책을 쓴 샘 밀러는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며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뉴델리 특파원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인도,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 외국에서 보낸 방랑자고 이주민이다.

저자는 “인간은 그 어떤 포유류보다 더 강한 이주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장류는 약 8000만 년 전에 등장했는데,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 유인원들은 모두 모험심이 덜했다. 예컨대 침팬지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을 떠난 적이 없다. 반면 인간은 과감히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전 세계로 이주했다. 단지 전쟁과 가난 혹은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과 모험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태어나 인도 서북부까지 영토를 넓힌 알렉산더 대왕을 세계화의 초기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해석한 부분은 흥미롭다.

32세 나이로 요절한 그는 동서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 계획안에서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제안했다. “인구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또 반대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주시키라. 그리고 가장 큰 대륙을 통혼과 친족 관계를 통해 화합과 우의로 이끌라.” 저자는 “알렉산더는 아주 거대한 대륙 규모의 사회적 통합을 꿈꾸었던 것 같다”고 했다.

책은 계속해서 이주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살펴본다. 바이킹도 그중 하나다.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바이킹이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를 거쳐 지중해까지 도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60년대 고고학자들은 캐나다 동쪽의 뉴펀들랜드섬에서 150명 정도가 살 수 있을 만큼 큰 바이킹 정착지 흔적을 찾아냈다. 콜럼버스보다 약 500년 앞선 일이다. 다만 이누이트 등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 더 이상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집단 이주는 동아시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인들의 세계 이주는 19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수천만 명이 중국 남부의 고향을 떠나 곳곳으로 흘러들었다. 다수는 계약 노동자였다. 페루에선 10만 명 넘는 중국인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거나 구아노 산업에 종사했다. 1849년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시작되자 중국인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고, 세탁소를 차리고, 시가에서 신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 공장에서 일했다.

책이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주’보다 ‘이주’가 일반적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정된 주거지와 국적을 갖는 것이 마치 인간의 한 조건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가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은 분석적이기보다 사색적이다. 체계적으로 이주의 역사를 서술하기보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뜨문뜨문 보여준다. 오늘날의 이주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1970년대에서 멈춘다. 집단 이주가 어떤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불만을 예상한 듯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에서 다른 것을 기대한 분들께 짧게나마 사과와 해명을 드리고 싶다”며 “아마도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책에서 이야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주라는 주제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좀 더 치밀하게 이 주제를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겐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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