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다. 출산율이 하락세를 거듭하자 우리 사회에는 저출산 현상에 대한 체념론이 늘고 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인구학적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극적인 산아제한에 성공했다. 1962년 무려 5.74명에 이르렀던 합계출산율을 1982년 2.39명으로 떨어뜨렸다. 그뿐 아니다. 최근에는 출생 아동 가운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월등히 많은, 세계 최악의 출생 성비 불균형을 해결했다.
‘남초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출생 성비 불균형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해당 통계를 처음 집계한 1970년 성비는 109.5.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109.5명이었다. 자연 성비인 105보다 4.5나 높았다. 성별 검사와 낙태가 대중화하며 상황은 더 악화했다. 1990년 성비는 116.5에 달했다. 난관 극복의 원동력은 1990년대 말부터 전개된 문화 정책이었다. 온 나라가 하나가 돼 성비 왜곡의 근본 원인인 남아 선호 풍조를 종식하고자 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아들 선호 문화의 대체 방안을 연구했다. 중구난방식 정책 남발을 막아 혈세 낭비를 최소화했다. 가족법을 개정했다. 전통문화를 훼손한다는 반발에도 남성 중심인 호주제를 폐지했다.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에 여성 개발 항목을 포함했다. 경제활동 참여를 도와 여아 출산의 망설임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언론은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했다. 인공중절의 위험성을 다룬 드라마를 만들었다. 공익광고 캠페인을 단행했다. 1997년에는 남초 현상을 주제로 선정하고 융단폭격식 광고를 실시했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각종 매체에서 성차별적 내용이 다뤄지지 않도록 했다. 기사와 칼럼은 물론 TV 오락 및 연예 프로그램에서 여성 비하와 남아 선호 발언을 삼갔다. 국민들은 기적과도 같은 ‘딸바보’ 신드롬으로 화답했다. 딸을 좋아하는 부모, 특히 아빠를 지칭하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이었다. 이후부터 인터넷과 SNS에는 딸을 예뻐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넘쳐났다.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해 아들 편애 문화를 뒤흔들었다. 저술 활동도 활발했다. 딸바보 제목을 단 서적이 서점가를 뒤덮었다. ‘배운 사람’이라면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20년 가깝게 계속된 노력이 결실을 봤다. 맹목적인 남아 선호 문화가 사라졌다. 2013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절대다수는 “자녀를 한 명만 갖는다면 여자아이를 낳겠다”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출생 성비가 정상화됐다. 2016년 105를 기록했다. 그 뒤로도 하향 추세가 이어졌다. 밸러리 허드슨 미국 텍사스 A&M대 교수의 분석과 같이 한국은 ‘비정상 성비를 정상으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됐다.
남초 현상 극복 사례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희망을 갖게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 정책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일관된 노력이 요구된다. 문화는 긴 세월 동안 축적된 규범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특권이자 축복인 출산을 멍에와 저주로 여기게끔 한, 과거 정부의 방조와 지원을 업고 성장해온 반(反)출산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한다. 전방위적 출산·육아 지원 대책과 함께 친(親)출산 문화 진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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