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1996년부터 2011년까지 3개의 통신사업자가 이동통신시장을 독과점했다. 그 기간 프랑스 정부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진입을 유도해 통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려 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2011년 통신 3사의 시장점유율은 88.7%에 달했다.
현재 국내 통신시장은 10여 년 전 프랑스 통신시장과 판박이다. 한국도 이동통신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이래 지금까지 통신 3사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그간 한국 정부도 통신사업자에게 통신망 도매 제공 의무를 부여하는 등 알뜰폰 사업자들의 진입과 활성화를 유도했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 결과 올초 기준 통신 3사의 시장점유율은 82.5%에 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유도했고, 마침내 2012년 프리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통신사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프리모바일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펼쳤다. 우선 통신료를 반값으로 낮췄다. 가입자의 번호이동을 제한하지도 않았다. 통신 3사가 경쟁을 회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소비자 고착화 전략에 정면 승부를 건 것이다. 기존 통신사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통신료가 반값인 프리모바일로 갈아탔다가 통신 품질 등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기존 통신사로 쉽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불식하고 싸지만 품질이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가입자를 급속히 늘린 프리모바일은 1년 만에 3위 사업자를 제쳤고 서비스 개시 3년이 채 안 되는 2014년 말에는 2위 사업자와 맞먹는 2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 신규 사업자의 등장과 성공은 통신시장의 가격 경쟁을 촉진했다. 프리모바일이 시장에 진입한 이후 2위와 3위 사업자의 통신요금은 꾸준히 하락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신 품질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프리모바일의 진입으로 통신 기지국과 중계기 증설 등 투자 경쟁이 촉진되고 소비자 후생이 증대됐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이달 초 통신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통신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고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하며, 인프라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이번 방안의 핵심이다.
신규 사업자 유치를 위해 정부는 신규 사업자에게 전용 주파수를 할당하고 설비 구축 등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겠다고 했다. 통신요금 인하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저렴한 5세대(5G) 요금제가 출시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단말기 추가지원금 한도를 공시지원금의 30%로 상향하며 선택약정 할인제도가 2년에서 1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했다.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5G와 초고속인터넷 전국망 구축을 내년까지로 못박았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 한도와 같은 반경쟁적 규제는 여전히 존치하면서 일부 방안에서는 통신사에 요금 인하와 투자를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통신요금 인하와 인프라 투자 활성화는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 신규 사업자 유치의 결과로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랑스 사례에서 봤듯 가격 인하와 투자 활성화는 경쟁의 결과이고 기존의 고착화된 시장에서 경쟁은 신규 사업자에 의해 촉진된다. 독과점이라는 잔잔한 강물에 메기가 들어와야 물고기들이 정신을 차린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없는 한 정부의 통제는 단기적 성과를 거둘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독과점 기업에 경쟁을 회피하고 암묵적으로 담합할 수 있는 구실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결국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느냐는 신규 사업자가 통신시장에 진입해 공격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통신은 미래산업의 기반을 제공하므로 비록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어도 통신망을 직간접으로 이용하는 혁신 기업에 수직결합의 시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와 통제로 인해 자유로운 경영활동에 제약이 있는 국내 통신시장에 과연 이번 방안으로 신규 사업자가 들어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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