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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기술주 매수량이 한도에 다다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 보도했다.
포트폴리오에서 ‘빅테크(대형 기술주)’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제한 범위까지 차올라 더 이상 이들 종목을 사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분산형(diversified)’으로 분류되는 펀드들은 한 종목에 대한 투자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릴 수 없다는 규제를 받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피델리티의 ‘콘트라펀드(Contrafund)’는 지난 5월 말 메타, 벅셔해서웨이,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주식을 추가 매수할 수 없었다. 당시 이들 주식이 콘트라펀드 전체 자산의 32%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80억달러(약 136조5000억원) 규모로 운용되고 있는 콘트라펀드는 피델리티의 대표 뮤추얼펀드 상품이다.
비슷한 시기 블랙록의 기술주 중심 투자 펀드(Technology Opportunities Fund)도 애플, MS, 엔비디아 주식의 매수가 막혔다. JP모간의 라지캡(대형주) 투자 전용 뮤추얼 펀드(Large Cap Growth Fund) 역시 MS,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주식의 보유 한도를 넘어서면서 매수 요청이 차단됐다.
FT는 “최근의 증시 랠리를 고려하면 러셀1000 성장 지수 등 대형주를 추종하는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 다른 펀드들도 (기술주) 보유 한도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분산형으로 등록된 뮤추얼펀드들의 상품 구성 당시 지분 비율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5% 이상이었던 종목의 비중이 25%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룰을 어길 경우 별도의 패널티는 없지만, 관련 종목을 추가 매수할 수 없다는 제약을 받게 된다. 다만 의도치 않게 해당 규칙을 어긴 펀드가 손실을 봤을 경우에는 투자자들로부터 법적 구제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다국적 로펌 데처트의 스티븐 코헨 파트너 변호사는 “고객은 운용사가 주주 승인 없이 비(非)분산 투자를 단행, 상품 등록 신청서에 중대한 허위 진술을 했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매니저의 역량에 따라 적극적 투자 전략을 고수하는 ‘액티브펀드’들은 이 규칙을 비교적 철저히 준수해 왔다. 다만 SEC는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는 패시브펀드에는 ‘25% 룰’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겠다고 2019년 밝혔다.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유 한도를 넘길 가능성을 고려해서다.
일부 운용사들은 펀드를 ‘비분산형’으로 재분류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티로우프라이스는 자사가 운용하는 대부분의 펀드를 비분산형으로 바꿔 집중 투자가 가능하게 했다. 이 방법은 주주들의 승인이 필요하며, 위험회피형 투자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시장에선 25% 규칙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3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리서치 어필리에이츠의 롭 아르노 회장은 “룰이 강제되지 않는다면 이는 곧 룰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는 뜻”이라며 “누군가에게는 비중확대(overweight)의 기회가 아예 차단되는 셈”이라고 했다.
소수 빅테크의 미 증시 지배력은 나스닥의 ‘특별 리밸런싱’ 결정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나스닥은 오는 24일 MS,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등 빅테크들이 나스닥100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50% 수준에서 40%까지 낮추기 위한 가중치 재조정 작업을 단행할 예정이다. FT는 이 리밸런싱을 통해 “지수 추종형 펀드들은 계속해서 25% 룰을 충족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