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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가 ‘약(弱)달러’에 베팅하고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큰 폭으로 완화하면서 ‘소프트랜딩(soft landing?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움직임이다.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JP모간체이스, 골드만삭스, HSBC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최근 일제히 달러화 강세 전망을 거둬들이거나 달러화 가치 하락을 예측하고 나섰다.
HSBC는 전날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개선 징후가 관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소프트랜딩 가능성이 합쳐지며 달러화 약세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뚜렷해진 강(强)달러 흐름이 이미 반전됐다고 봤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는 통화 담당 전략가들은 달러화에 대한 포지션을 ‘비중확대(overweight)’에서 ‘중립(neutral)’으로 전환했다.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달러화 가치 하락이) 단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달러화 약세의 정도가 강해질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JP모간은 “최근의 경제 데이터들은 달러화 강세 판단을 끝내야 한다는 지표로 작용했다”며 달러화 매수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걸쳐 올랐던 달러화 가치 상승분이 이른 시일 내에 모두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소시에테제네랄의 거시 부문 전략가인 키트 저크스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며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2020년 말 수준의 저점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약달러의 지표가 된 건 단연 물가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년 3개월 만에 최저치인 3.0%를 기록하면서 시장에선 미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통상 기준금리가 하락하면 시중에 풀리는 화폐량이 늘면서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지난 12일 달러화 가치가 15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경기 침체 위험 없이 Fed의 긴축 사이클이 종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번 달 한 차례 ‘베이비스텝’ 후 긴축이 종료되는 수순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선물 시장 트레이더들은 오는 25~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확률이 99.2%에 달한다고 봤다. 반면 9월 FOMC에서 추가 인상이 있을 가능성은 일주일 만에 22%에서 14%까지 낮아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치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개선되자 경기 침체 우려가 완전히 걷혔다는 낙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펀드매니저들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68%가 미 경제가 “미약하게나마”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드랜딩(hard landing?경착륙)’을 예상한 경우는 20%에 그쳤다.
도이체방크의 앨런 러스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데이터 개선과 함께 연착륙 전망이 우세해졌으며, 이는 달러화가 힘을 쓰지 못하는 환경”이라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