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70년 전 전쟁이 멈춘 뒤에도, 한반도를 가로지른 휴전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력이 대치한 곳이었다. 그러나 남북한군 사이의 충돌은 놀랄 만큼 적었다. 그런 사정은 휴전 회담이 시작된 뒤 두 해 동안 벌어진 ‘전선 정리’ 작전들 덕분이다. 지금 휴전선은 대체로 공격은 어렵고 수비는 쉬운 전선이다.
이런 역사는 38선에서 늘 충돌이 잦았던 것과 대비된다. 지형과 연관이 없었으므로, 38선엔 방어선을 제대로 칠 수 없었다. 특히 옹진반도는 다른 지역과 분리돼, 그곳의 17연대는 이동과 보급에 해로를 이용해야 했다.
이처럼 늘 불안한 한반도에서 큰 충돌을 막아준 휴전선이 지난 정권 아래 크게 허물어졌다. 2018년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에 따라 양측 경계초소(GP)들이 11개씩 없어졌다. 이런 조치가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인데, 실은 서로 감시해서 기습을 막아야 평화가 유지된다. 우리 국방부는 공평하게 없앴다고 강조했지만, 우리가 북한을 침공할 리 없으니, 철거된 북한군 GP가 몇 개든 뜻이 없다. 우리 GP들이 사라져서, 북한의 기습을 돕게 됐다는 사정만이 오롯이 남았다.
‘비무장지대 비행금지구역’은 더욱 문제적이다. 서로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어야 기습을 막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원리를 어겼을 뿐 아니라, 북한군이 정찰기를 띄울 능력이 작으므로, 실제로는 국군만 묶어놨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일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지뢰는 위험하니,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뢰는 가장 방어적인 무기다. 자기 땅을 지키는 군인들은 지뢰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비무장지대의 모든 지뢰는 거기 묻혀야 할 이유를 지녔다. 애초에 고지를 보호하기 위해 묻혔고, 그런 사정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북한 땅을 침공할 생각이 없는 우리에게 비무장지대의 지뢰들은 우리의 안전을 가장 값싸고 충실하게 보장하는 무기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북한군의 침공로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준 일이다. 강원 철원 서쪽 화살머리 고지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남북한군이 공동 발굴한다면서 12m 폭의 비무장지대 관통 도로를 냈다. 그런 도로라면, 전차 종대가 보병과 함께 진격할 수 있다(‘화살머리 고지’는 미군이 붙인 Arrowhead Hill의 직역으로 ‘화살촉 고지’가 맞는 이름이다).
고지 둘레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는 따로 도로를 낼 필요가 없다. 고지의 초소마다 보급로가 놓였으니, 지뢰를 제거하고 발굴하면 된다. 유해야 판문점에서 북한에 인계될 것이고,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도로는 필요 없다.
화살머리 고지를 고른 것도 얄궂다. 유해 발굴이 목적이라면, 그곳이 아니라 바로 동쪽 백마고지를 발굴해야 한다. 395m 백마고지는 그 지역의 요충이어서 싸움이 치열했지만, 281m 화살머리 고지에선 치열한 싸움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중공군 관할 지역이었다. 막상 발굴해 보니, 중공군 유해 몇 구가 나왔고, 북한군 유해는 없었다. 따라서 유해 발굴 사업의 목적은 이 지역의 주요 도로인 평강~철원 도로 복구였고, 그 도로 남쪽 끝에 있는 화살머리 고지를 발굴 장소로 내세웠다는 추론이 나온다.
비무장지대 관통 도로를 낸 음모 아래엔 그 도로가 군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있다. 그 도로로 남하한 북한군 전차부대는 곧바로 서울로 진격할 수 있다. 6·25전쟁에서 서울을 맨 먼저 점령한 북한군 ‘105땅크여단’이 남하한 경로다. 그래서 국군은 1960년대 말엽에 이 경로에 대전차 장벽들을 만들었다.
하나씩 보면, 이런 일들은 그리 중대한 사건이 아니다. 한데 모으면, 그것들은 비무장지대의 근본적 훼손을 뜻한다. 정부와 시민들이 비무장지대를 ‘평화를 위해 철거돼야 할 무엇’으로 인식하는 상황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근자엔 휴전선 바로 남쪽의 대전차장벽들도 허물었다고 한다.
핵무기를 갖춘 터라, 북한군은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다. 그런 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휴전선이 쉽게 뚫리지 않아야 한다. 한번 북한군이 우리 지역을 점령하면, 핵무기를 갖춘 북한군을 물리치기는 어렵다. 허물어진 부분들을 복구해서 휴전선을 튼튼히 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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