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12일 14:5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LG화학이 5년 만에 외화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서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로 현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춘 덕분에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다. 국내 우량 기업 EB에 대한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20억 달러(2조5786억원) EB 발행을 완료했다고 12일 공시했다. 이번 EB는 만기 5년과 7년 EB로 구성됐다. 각각 10억 달러씩 발행한다. 주당 교환가격은 각각 68만7500원과 71만5000원으로 책정됐다. 이번 거래는 씨티은행, 골드만삭스, HSBC가 주관사를 맡았다.
LG화학이 외화 EB 발행에 나선 건 2018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LG화학은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외화 EB를 발행했다. 6억 달러 규모의 투자자금을 0% 이자율로 조달했다. 확보한 자금은 중국, 폴란드 배터리 설비투자 등에 투입했다.
LG화학이 외화 EB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선 건 향후 신사업 투자 확대에 따른 대규모 자금 소요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열린 실적 발표 및 콘퍼런스콜에서는 올해 4조원 규모의 시설투자(CAPEX) 금액을 투입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LG화학의 자금 사정이 빡빡해졌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화학 업황 부진 장기화로 현금흐름이 위축된 탓이다. 올해 1분기 기준 LG화학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별도)은 7975억원으로 지난해 말(1조3232억원) 대비 약 40% 감소했다. 실적도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지난해 4분기 1659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지난 1분기에도 50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유동성 확보가 시급했던 LG화학은 올해 초부터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지난 1월 4000억원 모집에 3조875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발행 규모를 8000억원으로 늘렸다.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추가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 등 다양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이 가운데 외화 EB를 택한 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EB는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발행 금리가 낮은 편이다. 주가 상승기엔 제로금리(표면금리 0%)로 EB를 발행하는 곳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월 발행된 LG화학의 5년물 회사채의 금리는 연
3.763%로 책정됐다. 반면 이번 만기 5년 EB는 연 1.25%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외화 EB 투자 수요가 풍부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국내 우량 기업에 대한 해외 기관투자가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LG화학뿐 아니라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자사주를 기초자산으로 17억달러 규모 외화 EB를 발행했다. 배터리 양극재 생산 업체 엘앤에프도 지난 4월 5억달러 규모 외화 EB를 찍었다. 이번 LG화학의 EB 수요예측에서는 아시아와 유럽의 기관투자자 150여곳에서 100억달러 이상의 투자금이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EB 발행을 통해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을 일부 처분해도 지배력 유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이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은 81.84%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추가 자금 조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친환경 △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성장동력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게 LG화학의 구상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