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으로 의료체계 붕괴가 우려되는 가운데,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던 한 의사가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에 시달리다 결국 폐과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폐과 공지문 사진을 게재했다. 임 회장은 "우리나라 모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오늘도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 해당 의원과 원장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사진에 따르면 해당 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 A씨는 "꽃 같은 아이들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온 지난 20여년은 제겐 행운이자 기쁨이었다"며 "하지만 우리 의원은 한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인해 2023년 8월 5일 폐과함을 알린다"는 공지문을 부착했다.
A씨는 '악성 허위 민원'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그는 "타병원 치료에 낫지 않고 피부가 붓고 고름, 진물이 나와서 엄마 손에 끌려왔던 4살 아이, 두 번째 방문에서는 보호자가 '많이 좋아졌다' 할 정도로 나아졌다"면서 "하지만 보호자는 '간호사 서비스 불충분' 운운하며 허위,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가 아닌 이런 보호자를 위한 의료행위는 더 이상 하기 힘들다 생각하게 됐다"며 "향후 보호자가 아닌 아픈 환자 진료에 더욱 성의정심, 제 진심을 다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의원은 폐과하고 (만성)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더 이상 소아청소년 전문의로 활동하지 않아도 될 용기를 준 보호자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글을 맺었다. A씨와 연락을 나눈 임 회장은 "실제로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더 심각하고 화나는 일"이라고 전했다.
소아과 전문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67개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현황을 보면 정원 207명 중 지원자는 33명(16.4%)에 그쳤다.
일선 병원에서는 병원 내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이유로 의료진에게 폭언, 심지어 폭행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예민한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 감정적 소모와 의료 소송 부담이 커진 것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병원 문을 닫게 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지난달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전공의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연차별 수련 현황'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올해 304명으로 5년 전 850명 대비 546명 감소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현재 소아청소년과 환자와 보호자가 겪고 있는 극심한 외래진료 대기, 응급·입원진료 지연으로 인한 불편과 불안 등은 근본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진료 인력이 부족해 초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