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2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채용공고 108장이 붙은 게시대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각종 정보를 수첩에 받아적거나 게시판 사진을 찍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한 때 사회생활을 하다가 출산, 결혼, 집안 사정 등의 이유로 경력이 끊긴 ‘경력 보유 여성(경력단절여성의 긍정적인 표현)’들이었다.
서울시는 이날 경력 보유 여성에게 취업 기회를 소개하는 채용박람회 ‘2023 서울 우먼업 페어’를 열었다. 다시금 기업의 문을 두드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3개월 동안 구직지원금을 주고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 '서울우먼업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0년 전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뒀다는 공무원 출신 박모씨(40대·강서구)는 “나이 때문에 사회 복귀를 망설였지만, 새로운 직무와 기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페어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스타벅스코리아, 애플코리아 등 117개 기업이 인턴십 대상을 찾기 위해 참여했다. 이성은 양성평등담당관은 “대기업, 외국계 기업, 그리고 스타트업 기업이 1060명을 채용하는데, 3배가 넘는 4837명(오후 3시 기준)이 행사를 찾았을 만큼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김동욱 쓰리디뱅크 대표는 “서울시 정책을 통해 경력 보유 여성을 채용했는데,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보니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냈다”며 "경력 보유 여성 채용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명함 만들기, 퍼스널컬러 진단 등의 부대행사도 인기였다. 유치원 교사 출신 이모씨(40대·관악구)는 “15년동안 엄마로 살다가 사회로 다시 나오려고 하니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퍼스널컬러 진단을 통해 내게 맞는 꾸밈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후 3시부터는 정샘물 뷰티아카데미 대표가 메이크업 관련 특강을 열어 자세한 화장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단녀들과 기업을 매칭시켜주는 플랫폼 ‘부켓’은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캘리그라피 명함을 제작해줬다. 이 밖에 국내 최초 대기업 여성 최고경영자(CEO)였던 윤여순 전 LG아트센터 대표와 히잡 퍼스널컬러 등을 개발한 최윤선 모디스튜디오 대표가 강연했다. 서울시 지원을 받아 스포츠플랫폼 '위밋업스포츠'를 운영하는 신혜미 대표는 창업 성공담을 전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회적 풍토가 맞닿아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작년부터 4개 분야 28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가 경력 보유 여성들 지원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서울시에 따르면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주된 원인은 육아(42.8%), 결혼(26.3%), 임신·출산(22.7%) 순이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경력 보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은 오세훈 시장은 "여성들이 자신감, 성취감, 자부심 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