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03일 14:4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탈(VC)이 시리즈A 투자로 돌아가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성장기업 초기에 투자하는 모험 자본 역할에 나서려는 모습이다. 지난 몇 년간 시중 유동성을 바탕으로 수백억 단위의 시리즈C 이상의 성숙 단계에서 자금을 쏟아부었던 모습에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동안 VC들은 기업공개(IPO)로 투자금 회수가 쉬운 대규모 투자를 선호했다. 하지만 시리즈C 기업의 '몸값'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운 데다 IPO 회수 여건도 과거보다 열악해지면서 시리즈 A 투자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팁스 운용사 112곳으로 급증
3일 VC업계에 따르면 시리즈 A와 프리 시리즈 A단계의 기업들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한 VC 관계자는 “과거 비즈니스모델(BM)을 만드는 과정에 투자했다면 요새는 아이디어 단계에 있는 초기 스타트업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유명 VC들도 얼리 스테이지에 있는 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근래에 큰 단위로 투자하는 소식이 많아서 그런지 ‘알토스는 초기에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며 “우리가 투자한 회사에서 1년 이상 일한 분이면 초기 단계 있더라도 무조건 만나겠다”고 했다. 초기 단계 투자로 눈을 돌리는 상황을 반영한 발언이라는 VC업계의 해석이 나왔다. 알토스벤처스는 지난해 시리즈 G단계의 토스에 1000억원을 투자했던 VC다.
대형 VC를 막론하고 정부의 팁스(TIPS) 정책으로 몰려드는 현상도 이런 배경과 관련 있다. 스타트업 창업을 돕기 위해 2013년부터 중기부가 운영하는 팁스의 운영사는 올해 112곳으로 작년(81곳) 대비 31곳이 증가했다. 2019년 56곳에 비하면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작년에는 교보생명 등 대형 기업도 운영사 명단에 올랐다.
팁스 운영사 자격을 받은 투자기업이 일정 조건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정부로부터 최대 5억원을 지원받으며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한 VC 관계자는 “팁스를 통해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다음 달에 다른 VC 투자를 받기로 했다’고 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인기가 높아지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VC 펀드 규모도 점점 축소
전문가들은 VC의 펀드 규모도 점차 작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금이 적게 드는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추세인데다 시중 유동성이 감소하면서다. VC는 통상 국민연금과 각종 공제회 등 LP(유동성 공급자)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운영수익을 올린다.당초 3500억원 규모로 조성하려던 아주IB의 3호 블라인드펀드는 최근 500억원 줄어든 3000억원 규모로 마무리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VC의 펀드도 작아지는 추세다. 미국의 유명 VC인 파운더스펀드는 최근 8호펀드 규모를 18억달러(2조3600억원)에서 9억달러(1조1800억원)로 줄였다. 미국 인사이트파트너스도 당초 200억달러(26조1400억원)를 목표로 했으나 모집 실적이 20억달러(2조6100억원)로 그쳐 최근 펀드 규모를 15%를 줄인 150억달러(19조6100억원)로 변경했다.
자금을 모으더라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점도 VC업계의 골칫거리다. 한 CVC대표는 “기업가치의 괴리가 크다 보니 섣불리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펀드 레이징을 마무리한 한 VC대표는 “작년에 펀드레이징을 시작한 VC들은 타격이 적겠지만, 올해에는 거시 경제 영향에 따라 펀드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밀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