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이어지던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가 수개월간 멈춰 서 있다. 지난 3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4월에는 간호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며 “민주당이 매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압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정치권에서 나온 것과 상반된 움직임이다.
이를 놓고 민주당이 유독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처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민주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부의안을 처리해 5월 임시국회 이후에는 언제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5·6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은 데 이어 7월 임시국회 처리 가능성도 높지 않다. 민주당의 ‘강행 처리 드라이브’가 3개월째 중단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거듭된 입법 독주에 따른 부담감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방송법이 앞서 강행 처리된 다른 법들과 다르다는 현실론을 들어 이유를 설명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곡법 개정, 간호법 제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결의안 등과 비교해 방송법 개정은 시급성이 떨어져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말했다. 압박도 크지 않다. 양곡법은 농민, 간호법은 간호사단체같이 조속한 입법을 추진해야 할 막강한 배후 집단이 있지만 방송법은 그렇지 않다.
전략적으로도 향후 원내 운영 측면에서 대여 협상 카드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KBS 수신료 분리 징수 현실화, YTN 지분 매각 추진 등 향후 여야 대립 구도가 뚜렷하게 형성될 방송 현안에 대비해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방통위원장 임명이 방송법 개정안 처리 속도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방송법 개정안은 KBS·EBS·MBC 등 공영방송 이사를 9~11명에서 21명으로 확대하고, 미디어 관련 학회와 직능단체로부터 이사를 추천받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여당은 공영방송 이사회가 친야권 성향 인사들로 채워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방송법 개정안만 놓고 민주당의 강행 처리 행보가 멈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지난달 국회 부의안이 통과된 ‘파업조장법’이 더 빨리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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