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한 명의 문제를 사후에 해결하는 일이잖아요. 더 많은 사람에게 사전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사업 기회는 회색지대(합법도 불법도 아닌 영역)에 많이 있습니다. 법조인 경험은 이 기회를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되죠.” (이진 엘박스 대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창업한 변호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얘기다. 가상자산거래소 프로비트의 도현수 대표, 핀테크 스타트업 뱅크샐러드의 이정운 최고법무책임자(CLO), 의료 인공지능(AI) 회사 뷰노의 임재준 법무정책실장도 김앤장 출신이다. 이들은 왜 김앤장을 나와 리스크가 큰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를 설립한 정지원 대표는 어릴 때부터 창업을 꿈꾼 건 아니었다. ‘공부 잘하니까 서울대 법대 가라.’ 이렇게 정해진 경로만 생각했다. 서울대 법대와 로스쿨을 졸업한 뒤 김앤장에 입사했다. 더 넓은 세계를 목격한 건 김앤장에서였다. 기업들이 신규 비즈니스를 시도할 때 필요한 법률 컨설팅 업무를 했다. 정 대표는 “기업들의 신사업 내용을 많이 알게 됐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도 여럿 만나게 됐다”고 했다. 창업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김앤장을 나와 창업을 택한 정 대표는 AI를 활용한 맞춤형 영양제 솔루션을 개발해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3년 연속 혁신상을 탔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엘박스를 창업한 이진 대표는 김앤장에서 5년간 인수합병(M&A) 등 기업 자문업무를 담당했다. 법률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찾던 그는 2017년 김앤장을 퇴사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창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해외 창업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영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설득해내야 하는 과정에서 언어적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가 선택한 창업 분야는 가장 잘 아는 영역인 리걸테크였다. 판례 데이터를 확보해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앤장 출신이 만든 판례검색 사이트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임 실장은 로펌이 보내주기로 한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던 2019년 뷰노에 합류했다. 경찰대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해 변호사가 된 그는 당시 김앤장 입사 5년 차였다. 그는 “새로운 산업을 경험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보자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어 “수평적으로 토론해 결정한다는 점에서 로펌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며 “회사 성장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경험하고 부딪히면 보답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