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수협·신협 등 상호금융권에 외부감사 논란이 한창이다. 금융위원회가 1년에 한 번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제도 변경을 추진하면서다. 상호금융권 단위 조합은 현재 2년 또는 4년마다 외부감사를 받는다. 수협은 자산 300억원 이상인 경우, 산림조합과 새마을금고는 자산 500억원 이상인 경우 2년마다 받고 있다. 자산 500억원 이상 농협의 감사 주기는 4년이다. 그런데 이들 조합은 형평성을 들어 일률적으로 4년으로 늘려달라고 아우성친다고 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들 농·수·신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총 140건, 피해 규모는 286억3800만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늬만 조합일 뿐 사실상 금융업을 하는 이들이 감사 주기를 늘려달라고 하는 요구는 어이없다.
외부감사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뜨거운 곳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다. 정부가 1억원(현행 3억원) 이상의 민간 보조금 사업은 외부 회계법인 검증을 받도록 하자 시민단체 반발이 거세다. 앞서 이달 초 대통령실이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일제 감사를 실시한 결과, 1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가 적발됐다. 부정 사용 금액만 314억원에 달했다. 우리 사회의 권력으로 등장했지만, 이권 카르텔로 타락해 버린 비영리단체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노조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조에 고용노동부가 회계장부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라고 요구하자 조직적인 거부 사태까지 벌였다. 노조 역시 국민 세금으로 활동을 지원받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이 필수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현행 노조법도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조 탄압’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들고나온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신뢰가 생명인 이들의 국민 신뢰는 바닥권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전국 19세 이상 남녀 약 8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1년 사회통합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단체와 노조에 대한 신뢰도는 대기업, 금융회사 등 영리 기업은 물론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군대보다 낮다. 이들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관은 국회가 유일하다. 정부나 기업을 감시·견제하는 이들에 대한 국민 신뢰가 감시 대상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영국 싱크탱크인 레가툼이 최근 평가한 우리나라 신뢰지수는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18개 중 15위로 하위권인데 이런 주원인 중 하나로 비영리단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 하락이 꼽히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 자본’의 차이”라며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다”고 갈파했다. 감사는 신뢰 자본 확보를 위한 사회적 기본 인프라다. 시민단체, 노조 등 신뢰가 필요한 비영리단체일수록 자발적으로 외부감사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내부를 드러내기 거부하는 이들의 입에 발린 변명은 비용 부담이다.
그렇다면 ‘외부감사 공영제’ 도입을 본격 검토해볼 때다. 공공성이 강한 비영리 조직의 회계감사를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 인식하고, 독립된 제3자가 감사인을 선임해 외부감사를 수행하되 해당 감사 비용은 사회적 측면에서 분담하는 방안이다. 영국과 뉴질랜드 등에서 공익성이 요구되는 비영리·공공부문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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