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미희 빅크 대표는 성공한 연쇄 창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원 150만명을 보유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튜터링을 창업한 뒤 성공적으로 매각했습니다. 그런 그의 두 번째 도전을 이끌어낸 분야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입니다. 서비스를 정식으로 출시하기도 전에 유수의 투자자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는데요.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의 '애플'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김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네이버D2SF, LG테크놀로지벤처스, 한국투자파트너스, 본엔젤스,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펄어비스캐피탈, DSN인베스트먼트'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벤처캐피털(VC)로부터 서비스 정식 출시도 전에 100억원의 투자를 받은 회사가 있다.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의 '애플'이 되겠다는 꿈을 그린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스타트업 빅크 얘기다. 빅크는 2021년 문을 열었다.
100만 구독자보다 100명 '찐 팬'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김미희 빅크 대표는 크리에이터 시장의 가장 큰 '페인 포인트'로 크리에이터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점을 꼽았다. 대다수 크리에이터들이 SNS 플랫폼 안에서 트래픽을 이용한 광고 수익에 의존하다 보니 수익구조가 불안정했다. 그는 "구독자 수십만 명의 유튜버들도 까보면 월 수입이 직장인 월급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IP를 제작하는 데는 정말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수익은 안정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빅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빅크는 크리에이터와 팬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내놨다. 가수 등 아티스트와 팬덤을 잇는 '빅크 모먼트', 작가나 컨설턴트 같은 지식 크리에이터와 팬들을 이어주는 '빅크 오픈아워', 크리에이터들이 팬덤을 관리하고 IP를 수익화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인 '빅크 스튜디오' 등이 주력 서비스다.
서비스가 출시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성과는 벌써 눈에 띈다는 평가다. 빅크 모먼트를 통해선 아이키, 러블리즈 예인, 인피니트 장동우, 빅톤 승식 등이 팬미팅·콘서트를 열었다. 빅크 오픈아워를 통해서도 창업부터 커리어 개발, 재테크,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다양한 업계 '리더'들이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빅크를 이용한 크리에이터들의 SNS 팔로워 수를 합하면 150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빅크가 노리는 건 '찐 팬'들이다. 우선 플랫폼의 대부분이 유료 콘텐츠다. 오프라인 콘서트를 주관하고 티켓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해외 팬들을 위한 온라인 공연 생중계, '비하인드 컷'을 담은 VOD, 화보, 굿즈 판매 등의 전략을 짰다. 구독자 28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아는변호사'가 열었던 20만원짜리 라이브 세션은 오픈하자마자 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선 100만 구독자보다 100명, 1000명의 '찐 팬'이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빅크 플랫폼에서 세션 한 번을 열 때 상위 20% 크리에이터들은 평균 78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구매자는 평균 1530명이다. 월 평균 매출로 치환하면 기존 유튜브 등으로 얻는 수익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크리에이터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팬덤 비즈니스가 중요한 이유다. 해외에선 패트리온처럼 크리에이터들의 수익 창출을 위한 대형 플랫폼이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엔 파편화된 실정이었다.
창업 초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한 비결도 이런 접근 덕분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광고나 커머스 위주의 수익 구조를 갖고 크리에이터를 관리하는 멀티채널네트워크(MCN)와는 달리 '찐 팬'과 'IP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 박차고 나와 창업 길로
김 대표는 사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입지가 탄탄한 인물이다. 회원 수 150만 명이 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튜터링을 창업한 뒤 매각해 엑시트(회수)에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16년 튜터링을 창업한 그는 2년 만에 회사를 컴퍼니빌더인 마켓디자이너스에 매각하면서 '잭팟'을 터뜨렸다.김 대표가 처음 창업의 '맛'을 본 건 대학생 때였다. 6개월짜리 웹마스터 과정을 수강한 뒤 웹디자인 사업을 했다. '전국 최저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학교 학과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주 흥하진 않았다.
이후엔 2006년께 삼성전자에 들어가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이 됐다. 2009년 갤럭시S 시리즈가 나올 때 쯤엔 UX 디자이너로 일했다. 애플의 아이폰에 맞불을 놓기 위해 삼성전자가 모바일 사업을 전사적으로 늘리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 발명가가 꿈이던 그는 이 때 혼자서 스마트폰 UX의 프로토 타입을 이것저것 만들어보곤 하면서 창업의 열정을 서서히 키워가고 있었다.
직장인 시절 김 대표가 겪던 콤플렉스는 '영어'였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안 해본 영어공부가 없었는데, 인강 같은 걸 아무리 들어도 효과가 없다가 원어민과 1대 1 회화 수업을 하면서 실력이 확 늘었다"며 "이걸 살려 원어민 튜터와 이용자를 매칭해주는 튜터링의 사업모델을 고안해냈다"고 회상했다.
33살이던 2016년, 삼성전자를 박차고 나와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처음엔 주변에서 모두 뜯어말렸다. 스스로 고민도 했다. 아이템 자체는 성공할 거라 확신했지만, 스스로 창업가가 성향에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기자가 한 눈에 봐도 겸손하고 조용조용한 스타일 같았다.)
퇴사를 앞두고는 시중에 나와있는 창업 관련 책과 블로그, 기사 등을 모조리 읽었다. '당신은 사업가입니까?'라는 책에서 자신의 성향이 사업가와 맞는지 체크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전혀 맞지 않아 실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스'라는 책에서는 자신처럼 '백업 플랜'을 두고 리스크를 피하려는 사업가가 성공 확률이 30% 더 높다는 대목을 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힘겨운 결정이었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과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갖고 회사를 세웠다. 그가 되뇌인 건 제프 베이조스의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 세월이 흘러 여든 살이 됐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창업을 하지 않으면 미치도록 후회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튜터링이 탄생했다. 입소문을 타고 승승장구했다. 매각할 때 이미 회원 수 50만명을 훌쩍 넘길 만큼 성장했다. 김 대표는 "사실 너무 빨리 인수합병(M&A)을 진행한 느낌이 있다"며 "야구로 치면 이제 막 1루를 밟아본 것 같았는데, 두 번째 창업에선 꼭 홈런을 치고 싶다"고 했다.
연쇄창업 이끈 '빅 모먼트'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인 빅크는 김 대표가 말하는 인생의 '빅 모먼트'에서 왔다. 매각 이후 튜터링에 남아 경영을 이어가던 2019년, 필리핀에서 '튜터 콘퍼런스'가 열렸다. 튜터링에 참여하는 전 세계 튜터들 2000명 중 100여 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튜터들은 싱글맘부터 콜센터 직원까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많았다. 튜터링이 이들에게 하나의 강력한 고정 수입 수단을 준 셈이었다.이곳에서 김 대표는 튜터링 창업 이유와 비전에 대한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을 마치자 모든 참석자들이 일어나서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 대표는 "울먹거릴 정도로 벅찼던 경험"이라며 "튜터들이 '당신이 내 인생을 바꿨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는데, 평범한 내가 만든 플랫폼이 이들에게 이렇게나 큰 의미로 다가갔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되돌아봤다.
플랫폼의 혜택을 받는 대상을 튜터로 한정짓지 않고 모든 창작자(크리에이터)로 넓히고 싶었다. 마침 튜터들과 수강생 간 라이브 세션을 수없이 열었던 경험이 크리에이터와 팬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또 튜터들을 위한 대금 정산이나 수강생 관리 기능을 고도화한 것도 크리에이터를 위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빅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판단은 적중했다. 다수의 시청자가 들어와 있는 라이브 방송이나 콘서트에서 지연이나 끊김없이 크리에이터와 팬들이 소통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또 팬과 아티스트를 잇는 중재자 역할을 해주는 가상인간 MC도 선보였다. 팔로워 현황이나 수익을 관리해주는 빅크 스튜디오 역시 SaaS 열풍과 맞아떨어졌다. 단순 플랫폼 스타트업을 넘어 '테크' 회사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게 된 이유다.
크리에이터 생태계 '록인' 노린다
김 대표는 크리에이터를 새롭게 정의했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아티스트를 넘어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IP로 만들어 세상에 가치를 전하는 모든 사람이다. 곧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는 세상이 온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빅크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한 데 묶은 '올인원' 플랫폼을 지향한다. 라이브 콘텐츠부터 팬덤 관리까지, IP 사업만큼은 '풀 밸류체인'을 제공한다는 비전을 그렸다. 이를 통해 소비자를 붙잡아두는 '록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애플'이 되겠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번 애플에 빠지면 아이폰부터 애플워치, 맥북, 에어팟까지 '빠'가 생기는 원리와 같다.
최근엔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도 힘을 쏟는 중이다. 이미 MBC나 CJ ENM 같은 대형 파트너사가 생겼다. CJ ENM과는 글로벌 K팝 시상식인 'MAMA 2022'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4500만명이 참여한 투표 시스템을 개발했다. 올해는 미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등 4개 나라에서 열리는 K팝 콘서트를 온라인 생중계하고 팬덤 커뮤니티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또 MBC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에 올라가는 콘텐츠 IP를 활용해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사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대부분 빅크 스튜디오를 통해 진행한 사업이다. 크리에이터를 위해 만든 플랫폼이지만, 광고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탈피하려는 미디어 회사들이 IP를 수익화하기 위해 찾게 됐다. 올해는 더 많은 미디어와 협업하는 게 목표다.
사업 무대를 확장해가면서 인력도 대폭 늘릴 예정이다. 현재 전 부문에서 채용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안에 새로운 인력을 10명 이상 뽑을 계획이다. 김 대표는 "빅크는 전 직원의 '주주화'를 꿈꾸고 있다"며 "스톡옵션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제도를 실행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