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만개하던 지난 5월의 토요일, 남자친구와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에버랜드에 도착해 주차한 뒤 가장 먼저 교복 대여숍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입는 교복 때문이었을까, 놀이공원이라는 장소 때문이었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날에는 오후 6시만 돼도 골골거리던 내가 개점부터 폐점까지 12시간 이상 놀았다.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밤새워 놀 수 있겠다” 싶게 활기찼다. 놀이공원에 가면 밥 먹는 것도 잊고 하루종일 뛰어놀던 어릴 때의 모습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었다.
푹 자고 일어난 일요일, 인생 처음 내 돈으로 축의금을 내러 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가장 최근 결혼식 방문은 부모님을 따라간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어른 하객으로 가려니 옷부터 고민이었다. 유튜브에 ‘하객룩’을 검색하고 몇 개의 영상을 정독했다. 롱스커트와 반팔 크롭재킷이 빛을 발했다. 10여 년 만에 결혼식장에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음에 드는 식장을 예약하려면 1년 전도 빠듯하다던데, 신랑 신부가 얼마나 설레고도 바쁘게 준비했을까?” “내가 결혼하면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 마냥 뷔페만 기다리던 어릴 때와 달리 새로운 질문이 피어났다. 무엇보다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새로웠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걸까?
월요일 퇴근길, 버스에서 주말 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교복을 입고 아이처럼 신난 토요일, 롱스커트에 구두를 신고 점잔 떤 일요일의 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결혼식에 참석한 내 모습은 어른스러운 것이고,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어른인 척’ 꾸미는 게 어른스러운 걸까? 새삼 ‘어른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 “어른이 된다는 건 ‘다양한 역할과 그에 맞는 의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구나.”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은 딸, 친구, 학생으로서의 역할만 소화하기에도 벅찼다. 하나하나의 역할은 익숙해진다 쳐도, 번갈아가며 ‘롤플레잉’하는 게 관건이었다. 이제는 어느덧 여자친구, 콘텐츠 크리에이터, 직장인으로서 옷을 입고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 직장인이 됐을 때는 퇴근 후 여자친구, 딸 등 사적인 역할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곱씹었고, 주말에 데이트를 하면서도 월요일에 출근할 것을 걱정했다. 결국은 시간이 약인지, 이제는 직장인 역할도 조금은 더 수월하다.
실은 앞으로 어떤 역할들이 더 주어질지 설레고도 불안하다. 가깝게는 직장 선배 역할, 가능성 있는 미래에는 조직의 리더, 아내, 엄마 등의 역할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각각 역할의 난이도는 상이하겠지만 분명 내 것으로 익힐 날이 올 것이다. 능숙하게 구사 가능한 역할이 늘어나더라도 신나게 놀이공원을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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