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똑똑하고 게으르거나, 똑똑하고 부지런하거나, 멍청하고 게으르거나, 멍청하고 부지런하거나 등이다. (중략)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람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함을 갖춘 자다. 그는 무엇을 하건 간에 조직에 해를 끼칠 뿐이므로 어떤 책무도 맡아선 안 된다.”
1933년 독일군 수장 하먼슈타인-에쿠오르트 장군이 쓴 ‘부대지휘교본’은 ‘무식한데 신념을 가진 사람을 요직에 앉히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장군들은 때론 적군보다 아군한테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별들의 흑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까지 전장에서 부대를 참패로 몰아넣은 패장 12명의 사례를 소개한다. 개인 블로그에 전쟁사 관련 글을 연재하는 저자는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쪽은 패자들이다. 그들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감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슴팍에 휘장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장군들의 시선은 어딘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근면하고 성실했던 장군들은 어떻게 ‘똥별’이 되었는가”라는 띠지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책을 펼치면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황당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일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이끌었던 무다구치 렌야 장군의 임팔 전투다. 그는 미얀마에서 인도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작전을 지휘했다. 공명심에 눈이 먼 렌야는 무리한 작전을 펼쳤다. 우거진 밀림 사이로 병참 보급이 어려울 것이란 참모들의 조언에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주변 산이 이처럼 푸르니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고 명령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뒤에야 철수를 결정했지만, 출정했던 10만명 중 살아 돌아온 병사는 1만2000명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전장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늘 상책은 아니었다. 같은 시기 독일군에 맞서 방어작전을 고수하던 프랑스의 모리스 가믈랭 장군의 사례가 보여준다. 1940년 5월에 전쟁이 임박했을 때 프랑스군의 총병력은 500만 명에 달했다. 부하들은 독일군의 정비가 허술한 틈을 타 진격하자고 간언했다. 하지만 가믈랭은 독일 접경지역에 긴 참호를 파고 수비만 하는 선택을 했다. 20여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방식의 기억이 관성처럼 남은 결과였다. 결국 벨기에 국경을 통해 침투한 독일군은 6주 만에 프랑스를 장악했다.
졸전을 펼친 장군들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사실 이들은 원래부터 ‘무능한’ 리더가 아니었다. 책에 소개된 장군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베테랑들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근면하게 활약하며 승진을 거듭해온 인재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고집불통이 된 리더 개인과 이들에게 묵직한 감투를 쥐여 준 조직의 잘못이 결합한 탓이다. 저자는 “참모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권위주의와 나태함,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병폐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