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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마다 고액 연봉직 하나씩 더 늘겠네"…어떤 자리? [글로벌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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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대기업들이 투자, 기술 등 부문의 최고책임자 외에도 정치·외교 분야 최고책임자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른바 최고정치책임자(CPO·Chief Political Officer) 자리입니다. 정치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기업들의 대(對)정부 업무가 더 이상 뒷전에 머무를 수만은 없게 됐다는 분석이죠.

이 같은 내용은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 실렸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글로벌 핫이슈, 오늘은 정치·외교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개별 기업들의 전략이 될 수 있는 CPO에 관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휙휙 뒤집히는 정책 때문에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참고가 될 수 있게 말이죠.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정치적 부산물'에 휘둘리는 기업 경영환경
지난해 2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략, 2016년 미국 정치역사상 가장 극우적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2020년 타결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2018년부터 시작돼 반복적으로 프랑스 사회망을 마비시키는 노란 조끼 운동(유류세 인상 반대 등 반정부 시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칩스법 등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국 산업 생태계 육성)' 정책….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정치·외교가 개별 기업들의 비즈니스를 뒤흔들 정도로 타격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세계화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유권자와 각국 정상들이 만들어낸 '정치의 부산물'이라구요. 공급망과 무역 관계에 관한 모든 예측이 비켜 가게 된 오늘날, 기업 이사회는 자국뿐 아니라 주요 교역국(交易國)의 선거일을 주목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를 대비해서 말이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을 극복한 전 세계 기업들의 경영진 앞에는 이미 각종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나 인재 다양성 확보 같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미·중 갈등에 따른 탈(脫)중국 공급망 구축, 인공지능(AI) 규제 등 정말 다양한 범주에 걸쳐 산적해 있습니다.

영국에선 작년 3분기 실적발표 시즌에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어닝쇼크'를 보고한 FTSE100(런던증시에 상장된 100개의 우량주식) 기업들 수가 2008년 이후 최대치였다고 하네요. FT는 "이제 기업들은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정부만 외교 정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대기업들도 외교 정책을 수립해놔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장님(CEO)이나 회장님이 이 문제까지 관여할 수는 없겠죠?
정치의 생리 꿰뚫는 기술관료 필요
그래서 구상한 임원직이 바로 CPO입니다. 기업에는 회장이나 CEO 외에도 최고투자책임자(CIO),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다양한 C레벨 임원들이 존재합니다.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라는 임원직도 있습니다. 어쩌면 CRO의 업무가 CPO와 비슷한 것 아니냐고 할 수 도 있겠습니다만, 2010년대 이후 기업들이 정치외교적 불확실성에만 특히 집중해야 할 사건들이 너무 많아졌죠.

소액주주나 직원들 노동조합 입장에선 불만일 수 있겠습니다. 수억대의 고액 연봉을 받아 갈 C레벨 자리 하나를 더 늘릴 필요가 있겠냐구요. 그러나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이제 세계 각국의 국내 정치적 역학관계는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간 외교적·지정학적 동맹의 판도 역시 수시로 변하고 있죠. 즉 기업 환경에 있어서 이제 '정치적 불확실성'은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한히 반복될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CPO가 절실하다는 게 FT의 지적입니다. 이는 정치인 인맥을 자랑하는 선거판 장사꾼이 차지해서는 안됩니다. 정치인 인맥이란 것은 선거철이 끝날 때마다 쓸모없어질 한정판 인맥에 불과하니까요. 대신 정부는 의회, 정당, 언론 사이의 지속적인 삼각관계라는 점, 정치인이 특정 사안에 대해 여론보다 앞서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 정치판에서는 사업 및 경영과 달리 단순한 결론은 없다는 점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만이 CPO에 제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로 죽일듯이 경멸하는 대립구도 속에서 정치적 지저분함을 견뎌내고, 관용과 협력을 이끌어낼 줄 아는 것도 CPO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겠죠.

정부 개입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비즈니스 영역은 정부가 경제와 국가안보 사이에서 어떤 절충점을 찾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고안한 IRA와 반도체칩스법을 떠올려보세요. 미국이 "자국 산업 생태계를 다시 키우겠다"며 내놓은 이 법안들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최대 우방국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기업들은 (사실상 뒷짐지고 있던) 정부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정치외교적 전략 수립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각종 첨단기술 발전에 따라 규제도 더욱 늘어날 테죠. 챗GPT를 만들어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도 "AI를 규제해달라"고 자청하고 있는 지금이 CPO의 필요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분수령입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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