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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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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야단이 생각이 없다였다. 조금 약한 핀잔은 생각이 짧다생각이 미치지 못했다였다. 가장 심한 욕은 생각 없는 놈 같으니라고였다. 야단칠 때는 언제나 사람은 딱 생각한 만큼만 행동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마무리 지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듣고 자라 토씨까지 외운다.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나 그렇게 생각해서 행동하는 거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듣고부터 생각이 비로소 내 귀에 들어왔다.

원주에 사시는 친척 집에 아버지 편지 심부름을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잘 찾아가 전달했다. 문제는 오는 길에 생겼다. 원주에서 제천역에 내려 기차를 갈아탈 때 시간이 남아 역 승차장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사 먹느라 기차를 놓쳐버렸다. 마지막 기차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한참을 울었다. 역에 불이 들어올 때 집 쪽으로 가는 홈에 낯익은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몰래 올라탔다. 내가 내릴 역을 통과한 화물열차는 터널 입구 언덕에서는 힘이 부쳐 걷듯 달렸다. 전에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걸 봤던 대로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넘어지긴 했지만, 무릎에 상처가 났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며 나를 반겼다. 꿇어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아버지가 잘 생각해서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아버지는 넘어졌을 땐 바로 일어나지 말고 왜 넘어졌는지를 반성하고, 어떻게 일어날지를 먼저 생각해라라며 누구나 넘어진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도움 안 되는 걱정하지만 말고 방법을 찾아라라고 했다.

그날 말씀하신 고사성어가 유생어무(有生於無)’. 유생어무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40장의 천하 만물은 유에서 태어나고, 유는 무에서 태어난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유는 무에서 생겨나고, 무는 유를 생기게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천하 만물 자체가 유다. 그 유는 무 때문에 있는 것이다라고 다르게 해석했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라고 했다. 그날은 뭔 말인지 몰랐으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성어여서 언제쯤부터는 내게도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가 돼 좌우명처럼 여긴다.

아버지는 무에서 유를 찾는 방법이 생각이다. 생각 없이는 유를 찾을 수 없다. 무는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묻혀 있는 것이다라며 네가 세상에 왔었다는 일을 한 가지라도 하려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라고 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모방 없이 창조 없다. 누군가는 이미 생각한 거다. 모방을 부끄러워 마라. 골똘하게 몰입하면 다른 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창조를 해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자로 쓴 생각(生覺)’은 중국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써온 순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본래 한자어가 아닌 낱말에 그 음만 비슷하게 나는 한자로 적는 취음자(取音字). 아버지는 순우리말을 굳이 한자로 쓰면서 깨달을 각()’자를 쓴 거는 창조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을 뿐 이미 있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데 지나지 않는다. ()자는 볼 견()’배울 학()’의 생략형 (??)’이 합쳐진 형성자다. 끊임없이 보고 배워야 한다면서 생각의 깊이와 크기를 깊고 넓게 가질 것을 주문했다. 아버지는 사람은 한 시간에 2천 가지 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48천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오만가지. 하루만 집중해서 오만가지를 생각해보면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즉답을 원하거나 게을러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하지 못한다며 다그쳤다.

아버지는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 앞에 설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멈추었을 때 더 가봐라라고 늘 재촉하며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런 창의성은 오랜 기간 학습을 통해 얻는 습성이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몸에 익혀서 얻어야 하니 가르치기는 이를수록 좋고 자식은 물론 손주들에게도 꼭 일러주고 싶은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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