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독자 발사체(로켓) '누리호'와 달탐사선 '다누리' 개발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지니어들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우주항공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성명서를 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으로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우주항공 기술과 국방·안보가 하나로 융합되는 시대에 완전히 역행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범부처 통할 기구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을 낸 곳은 항우연 엔지니어들이 주축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부'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연구노조, 출연연 15곳이 가입한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하고는 관계 없는 곳이다. 누리호 성공의 주역인 항우연 발사체연구소와 나로우주센터, 다누리 개발 주체인 위성연구소 직원들 대부분이 가입해 있다. 작년 누리호 2차 발사를 성공으로 이끈 고정환 발사체연구소 누리호고도화사업단장 역시 이곳 조합원이었다.
항우연은 산하에 3소(발사체연구소·항공연구소·위성연구소), 3본부(경영지원본부·전략기획본부·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개발사업본부), 3센터(나로우주센터·국가위성정보활용지원센터·미래혁신연구센터), 4단(무인이동체사업단·SBAS사업단·스페이스파이오니어사업단·성층권드론기술발사업단), 9실(국제협력실·IT정보보안실 등)을 두고 있다. 임직원 수는 유일한 임원인 원장 포함 1048명이다. 이 가운데 보직자들 100여 명, 제2노조에 소속된 행정직원 100여 명과 비정규직 등을 제외한 850여 명 가운데 75% 가량인 630여 명이 전국과기노조 항우연지부에 소속돼 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우주를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는데, 왜 우주정책과 국가전략은 뒷걸음질을 치는 것인가?]첫째, 과기부 산하 외청으로 경남 사천에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에 반대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우주청특별법은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우주개발총괄기구를 중심으로 민군과 산학연이 하나의 ‘선단’을 구성하고 역할을 분장해 국가 차원의 추격전략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국회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연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우리는 긴급한 7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023년 5월 30일, 다누리호 임무와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을 완수한 지금, 한국의 우주개발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 노동조합은 우주 개발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한다. 연구현장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마저 국가적 이익이 아닌 정파의 협소한 자기 이권에 매몰된 당파적 전략에 찬동하고, 권력의 위력에 굴복하여 침묵한다면, 다시는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첫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하 과기부) 산하 외청으로 경남 사천에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에 반대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우주청특별법은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일단 만들고 개선하면 된다는 말은 주춧돌을 잘 못 놓고서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말과 같다. 잘못 만들어진 조직은 ‘좀비’가 되어 예산과 인력을 좀 먹고 올바른 기술조직의 성장을 방해한다. 부수지도 고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주외교도, 우주안보도, 우주국방과 우주산업도 감당하지 못하는 과기부 우주청의 문제점을 수도 없이 지적했다.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조차 다른 정부 부처들의 지적이 있었다. 다누리와 누리호의 성공은, 이제까지의 우주개발은, R&D 예산과 연구현장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다.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왜 뒷걸음질을 치는 것인가?
지금부터 우주는, 산업?국방?외교?안보?과학기술?인력 등의 분야에서 종합적이고 총체적 국가전략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국가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당파적 이해관계와 자기 지지기반만을 생각하는 정책이 망령처럼 다시 나타났다. 현재 우리의 정부체제에서는 국가우주원이든, 우주전략본부든 대통령 직속 기구로 우주를 총괄해야만 부처 간 사업과 예산을 조정하고 종합하여 국가적 차원의 우주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다.
둘째, “뉴스페이스”라는 단어에 취해서 우리 수준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저비용 재사용 상용발사는 스페이스X만이 가능하고, 3D 프린팅 기술로 의미있는 수준의 발사체를 제작해서 발사한 건 로켓랩뿐이다. 향후 10년 내에 정부 과제가 아닌 상용발사와 상용위성 제작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자체마다 핑크빛으로 색칠하고 있는 미래 우주산업은 이대로라면 어느 것 하나 성공하기 어렵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하 항우연)이 확보한 기술을 이전만 하면 뉴스페이스가 도래할 거라는 착각은 항우연의 수준으로든 국내 기업의 수준으로든 환상에 가깝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무능하고 어리석은 장수가 계산을 못해서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면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는 망국으로 가고 만다.
지금 한국 우주개발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추격과 기술, 인력이다. 다누리와 누리호의 성공은 추격을 위한 발판을 만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우주선진국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추격해야 한다. 다음 단계의 추격을 위해서는 이제 항우연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추격을 위한 ‘선단’이 구성되어야 하고 추격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한가로운 정치 쇼나 지자체 간 부처 간 ‘땅따먹기’하면서 어영부영할 시간이 없다. 국가 예산도, 가용가능한 기술 인력도 한정되어 있다. 시급하게 예산과 인력을 조직해야하는 사업이 있고, 중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이 있다. 우주산업은 긴급하고, 우주탐사는 중장기적이다. 우주산업도 상용발사와 상용위성 제작과 같은 우주인프라 구축이 있고, 우주인터넷과 위성항법, 지구관측영상정보 사업과 같은 위성정보활용서비스 산업이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적시에 저비용으로 상용위성 제작과 발사를 하고, 쉽고 싸게 위성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우주인프라와 위성정보활용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군과 산학연이 하나의 ‘선단’을 구성하고 역할을 분장하여 국가 차원의 추격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항우연과 천문연, 국방과학연구소의 우주 부문,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등 우주 관련 공공기관들을, 일본의 JAXA나 프랑스의 CNES를 모델로 대통령 직속 우주전담부처 산하 우주개발총괄기구로 통합하여, 정부 부처와 기업, 대학의 우주개발 수요에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주인프라 구축을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발사체와 위성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운용하는 연구현장에서 바라보는 긴급한 과제들이 있다.
정부와 국회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자기 자리나 지키고 자기 패거리의 이권이나 챙기려는 노회한 기관의 관리자들이 아니라, 연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1. 누리호와 차세대발사체는 재사용이 어렵고 비용 문제로 중대형 상용발사체로 활용하기 어렵다. 재사용 저비용 중대형 상용발사체에 적합한 엔진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저궤도 중대형 상용발사체는 팰컨9을 모델로 하되 멀린 엔진급의 메탄 엔진을 3D 프린팅 공정을 통해 설계?제작해야 한다는 현장 연구자들의 제안을 사업화할 필요가 있다. 5년 정도의 사업 기간에 수백억 수준의 예산으로 충분하고, 관련 업체와 항우연의 공동개발로도 가능하다.
2. 저궤도위성용 소형 및 중대형 상용발사장, 정지궤도위성용 상용발사장 등을 국내에 구축해야 한다. 나로우주센터 제1발사대를 민간을 위한 저궤도 소형발사체 발사대로 개조해야 한다. 나로호 발사를 위해 환경영향 평가가 완료된 제1발사대는 빠른 기간 내에 민간 소형발사체 발사대로 개조되어 사용될 수 있다. 수천억을 들여 30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축된 제1발사대를 부수고 그 자리에 차세대발사체를 위한 발사대를 만든다는 계획은 잘못된 것이다. 누리호 발사대를 차세대발사체 발사대와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조 방법이 있다. 고도화사업과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의 일정을 조정함으로써 현재의 제2발사대를 누리호와 차세대발사체 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수의 저궤도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중대형 발사체를 위한 상용발사장을 현재 제3발사대 부지에 건설하고, 동해안 북부에 정지궤도위성 상용발사장을 구축해야 한다. 발사체가 탄환이라면 발사대는 권총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발사장 개조 및 건설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3. 나로우주센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정부와 민간의 저궤도위성 활용 수요에 부합하는 저궤도위성용 소형 및 중대형발사체 상용발사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박사급 개발자들이 발사운용을 담당하는 식으로는 상시 상용발사를 수행할 수 없다. 나로우주센터는 상시적인 상용발사를 위한 조립동과 발사대 구축?운용, 발사운용, 발사안전, 발사허가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력이 보강되고 조직이 개편되어야 한다.
4. 미국의 국제 무기 거래 규정 (이하 ITAR)은 종류와 범위, 수준이 다양하다. 한미 미사일 협정이 폐기될 때 ITAR 해제 역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 일괄적으로 ITAR를 해제하는 것이 어렵다면 필수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라도 우선적으로 해제 혹은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ITAR 해제와 완화를 위해 우주외교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5. 정부 위성 수요와 활용에 대한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우주인터넷, 위성항법, 지구관측 등과 이를 활용하는 위성정보활용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부처별로 우후죽순 너도나도 수행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범부처 차원의 위성 및 위성활용에 대한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6. 위성 분야 기술이전은 10여 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항우연의 위성조직은 ‘위성공장’ 이고 향후 10년 내에 이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준이고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발사체 분야 역시 같은 패턴을 따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우연의 발사체와 위성 분야를 중심으로 우주개발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우주수송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우주개발공사에 부여하는 것이다. 우주개발공사의 설계국은 대전에, 제작공장은 기계부품 업체가 많은 창원?사천 지역에, 조립공장과 대형시험설비는 우주센터가 있는 고흥?순천 지역에 둘 수 있다. 우주개발공사는 국가사업의 책임성을 높일 뿐 아니라 업체들과의 업무분장과 협력을 통해 상용위성 제작과 상용발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우주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되고 스페이스X처럼 우주수송에서 수익이 창출된다면 민영화할 수도 있다.
7. 우주 분야 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산학연 공동의 협력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항우연의 경우 추가 예산 증액 없이 총인건비와 수권 문제, 시간외수당 문제 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 1년 동안 바뀐 게 없다. 가용한 기술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열악한 처우로 연구현장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주 분야 인력양성, 인력수급, 인력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하며 적절한 수준의 임금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서구의 대항해시대가 다시 우주시대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서구의 지배라는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다. 우주로, 미래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당파를 넘어, 2030년 ~ 2035년의 결정적 시기까지 국가 우주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에 우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로켓티어들의 노조이자, 위성 개발과 운영의 A부터 Z까지 수행한 엔지니어들의 노조이며, 항공의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항공연구자들의 노조이며, 이를 지원하는 연구지원인력들의 노조인, 우리 항우연 노조가 국민들과 언론, 정부, 국회 관계자들에게 보내는 고언이다.
2023년 6월 1일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