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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24일 중국을 방문한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의 최대 임무 중 하나는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시베리아의 힘 2(PS2)' 가스관 프로젝트를 확정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버티기 속에 미슈스틴 총리는 빈손으로 귀국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대한 협상력이 현저히 약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 수출 막혀 다급해진 러시아
작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 주석과 PS2 프로젝트를 원론적 수준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양국은 아직도 최종 결정에는 이르지 않았다. 러시아는 내년 착공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시 주석이 지난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양측의 입장은 갈렸다. 푸틴 대통령은 합의가 다 된 것처럼 언급했지만 시 주석은 "거의 모든 변수에서 실질적으로 합의를 이뤘다"며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면서 러시아는 PS2 프로젝트에 더욱 다급해진 상황이다. 러시아 정부 재정의 핵심인 에너지 수익은 지난 4월 6475억루블(약 10조6900억원)으로 작년 4월보다 64% 급감했다.
PS2 가스관은 북극해의 러시아 야말반도 가스전에서 출발해 몽골을 거쳐 중국 나이멍구자치구로 들어갈 예정이다. 러시아는 예전에 야말 가스전 물량을 유럽으로 수출했다. 유럽 수출이 막히면서 야말산 가스는 갈 곳을 잃은 상태다.
중국은 '시베리아의 힘 1(PS1)' 가스관을 통해 2019년부터 러시아산 가스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액은 2018년 4억달러에서 지난해 109억달러로 급증했다. 중국의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의 비중도 같은 기간 0.8%에서 12%로 올라갔다. 하지만 PS1은 러시아 동부 차얀다 가스전에서 채굴한 가스를 운송하기 때문에 유럽 수출 감소를 대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가격 후려치는 중국
에너지 전문가들은 중국이 PS2 프로젝트를 미루면서 가스 가격을 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범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의회의 알리차 바쿨스카 연구원은 "중국은 PS1 당시에도 협상을 질질 끌며 유리한 계약을 끌어낸 경험이 있다"며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의 협상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러시아 투자은행 BCS글로벌마켓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합의해 PS가 정상 가동되면 프로젝트 담당자인 국유 가스기업 가즈프롬에 매출 연 120억달러, 러시아 정부 재정에는 수익 46억달러(약 6조1000억원)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이는 1년 수익인데도 러시아 정부의 지난 4월 한 달 동안의 에너지 수익(6475억루블·약 10조6900억원)보다 적은 액수다. 타티아나 미트로바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은 "전쟁 장기화로 재정적자가 쌓여 러시아는 추가 수익에 다급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가스관 건설로도 이익 챙길 중국
중국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장기적으로 늘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중립 2060'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서방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중국의 가스 소비는 2010년에서 2020년까지 세 배 이상 늘었으며, 자체 생산은 두 배가량 증가했다. 수입량은 같은 기간 8배 급증했다.작년 기준 중국의 가스 수입액은 909억달러였으며, 호주(165억달러), 카타르(141억달러), 러시아(109억달러), 투르크메니스탄(103억달러), 미국(94억달러) 순이었다. 2021년 2위였던 미국이 5위로 내려갔다. 호주산 가스 수입도 줄여갈 것으로 관측된다. 카타르산 가스는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수입하는데, LNG 운반선이 '화약고'로 부상한 남중국해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중국은 이에 육로를 통한 수입을 계속 늘리고 있다.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가스관을 개설 중이다.
중국은 PS2 건설 자체로도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러시아가 자금이나 장비, 설비 등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태여서다. PS2의 중국 측 파트너인 중국석유는 공사 비용을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조달하고, 건설 장비와 강관 등도 중국산을 활용할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장점이 많은 PS2 프로젝트의 최종 합의를 미루는 배경에는 러시아를 대미 연합 전선 파트너로 활용하면서 경제적 이익까지 챙기려는 중국의 속셈이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