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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시민의 삶에 기여 못하는 '디지털 행정'은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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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생각하지 않는 기술은 불편하고 위험하다. 과거에는 더 편리한 기술이 있었는데도 보안과 안정성을 이유로 전 국민이 정부의 공인인증서만 사용해야 했다. 그 결과 공인인증서를 잃어버리거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경험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인인증서 독점이 완화되고 생체 정보나 휴대폰을 이용해 손쉽게 인증이 가능해지자 다양한 인증 서비스와 보안 기술의 혁신이 나타났다.

반면 보안이나 민감한 업무를 다루지 않는데도 적지 않은 공공기관에서 구글이나 일부 민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와이파이 접속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공공기관 직원의 어려움은 ‘보안’이라는 기술적 이유로 무시된다. 110만 명이 넘는 정부 공무원, 40만 명이 넘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매일 보안이라는 이유로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안에 대한 투자나 기술 혁신은 지체된다. 그리고 이 지체는 행정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

정보 축적 못지않게 공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기반으로 초등학교부터 고등교육기관까지 국가 교육통계를 수집하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어 민간 원서 접수 기업이나 학원의 합격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대학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대학정보포털 자료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사기업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졸업생의 연봉 정보까지 공개하고 그에 따라 매년 대학 학과의 정원을 탄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비교된다.

부족한 정보는 잘못된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반도체 인력 부족, 공대 인력 부족을 근거로 학과 정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공대생 취업률은 2011년 76.1%에서 2021년 66.4%로 낮아졌다.

2020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직업이 1만2823개나 있다. 지난해 기준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73.8% 수준인데, 청년들은 직업별 매력을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대학을 선택한다. 잘못된 정책으로 대졸 실업자를 양산할 위험이 큰 것이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 한국의 냉혹한 현실이다. 아무리 엄청난 데이터가 있어도 정책과 시민의 판단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디지털 정부는 허상이다.

기술 자체의 우월성보다 시민의 삶과 공익에 기술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 봉쇄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사실 시민 자유의 엄청난 희생과 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 이는 오류 가능성에 대한 관용(tolerance)이 없어서다.

정부와 기업은 막연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환상을 광고하기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기술이 시민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하고 공공가치를 창출하는지를 현실에서 보여줘야 한다. 시민들이 이런 변화를 체험할 때 디지털 기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디지털 대전환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이 없는 기술도, 오류가 없는 데이터도 없다. 정전에 따른 서비스 중단이나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해킹 사건, 일선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침해 행위 등을 이유로 정보 공개나 새로운 기술 도입을 미루기 시작한다면 미래에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공공기관은 클라우드를 도입해 데이터 칸막이를 줄이고 민간의 우수한 기술을 사용하고 싶지만, 매번 보안을 이유로 제약받고 있다. 행정이 가진 복잡성을 이해하면서 현장의 문제를 풀고, 시민의 삶을 바꾸려는 실용적인 노력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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