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빠진 서해 갯벌 부둣가에는 비스듬히 누워 다음 물때를 기다리는 배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바닷물은 쓸려 나가 보이지 않고, 배들이 다시 뜰 수는 있을까, 진짜 여기까지 물이 들어오기는 하는 걸까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바이오를 지탱하던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바이오 벤처 신규투자가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두 건에 그치면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 1~2월에 비상장바이오 투자가 단 1건씩에 그쳤습니다. 3월에는 4건, 307억원으로 증가했지만 벤처 초기단계인 시리즈A와 B단계의 신규 및 후속투자가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투자분위기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성장성 특례상장 1호인 셀리버리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면서 투자분위기는 더욱 사납습니다. 전문 평가기관의 기술 평가 없이 증권사의 기업 성장성 보고서에 근거해 상장이 가능한 성장성 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추가 부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에 따라 바이오 인수·합병(M&A) 시장이 협소한 국내 바이오벤처의 유일한 탈출구인 기업상장 관문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는 벤처캐피탈의 바이오벤처 초기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연결됩니다.
이처럼 꽁꽁 얼어붙은 고금리 금융환경에서 코스닥에 상장된 신약개발 전문 바이오텍의 현재 자금현황은 어딸까요. 바이오 기업의 자금현황을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으로 몇 년간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가를 계산해 보는 겁니다. 2022년 12월 말 기준 국내 코스닥 바이오 기업 30개(순수 신약개발 기업으로 대부분 영업적자를 기록)의 현금가용년수(유동자산-유동부채/영업손실절대값)를 분석해 본 결과 1.8년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금으로 1.8년간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나스닥 바이오텍의 현금가용년수는 평균 2~3년 정도이고, 이 수치가 2 이하로 내려오면 기업의 CFO(자금담당임원)는 자금확보 작업을 서두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국내 바이오텍 중 현금가용년수가 1.0 이하인 기업은 30개 기업 중 몇 개나 될까요? 11개로 대략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이 기업들은 1년 이내에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셀리버리는 작년말 기준 -0.3의 현금가용년수를 나타냈으며, 이와 비슷한 수준의 취약한 자금상황에 직면한 기업들도 추가적으로 관찰됐습니다.
물론 작년 말 대비 3개월 이상 시간이 흘렀으니 추가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현재 보유자금에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텍은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신약을 개발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과 나누는 것이 업의 본질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일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모건스탠리가 2022년 초에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미국 바이오텍 중에서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한 기업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국내 바이오텍 30개 중 11개가 자금수요가 있으니 대략 30%로 미국과 비슷한 비율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자금조달 시장 분위기는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자금 소진 속도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수치적으로 보여줄 만한 실적이 마땅치 않으니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저금리 시장에서 순조로웠던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전 대전에 기반을 둔 바이오텍 대표들이 은행과 협력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한 바이오벤처를 돕기 위해 투자조합을 결성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힘든 금융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기술경쟁을 하면서도 바이오 꿈을 가진 후배들을 위해 자금을 투자하고, 시간을 쪼개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고 합니다. 이들이 불씨를 살려 바이오를 연구하는 젊은이들이 꿈을 펼치고, 기술력 있는 코스닥 기업들이 연구개발 자금을 원활히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선별적 금융지원을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은 세계 모든 바이오 기업들이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대응하였는가에 따라 다음 세대의 먹거리이자 5차산업으로 불리는 미래 바이오산업의 국가별 경쟁력이 결정될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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