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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버려" 모욕당한 협주곡…인류가 사랑하는 명작으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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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6억 권 넘게 팔리며 성경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해리포터 시리즈’는 12개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다. 1986년 세워진 영국 런던의 블룸즈버리 퍼블리싱은 마침 어린이책을 위한 투자를 강화하던 차였기에 해리포터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블룸즈버리가 없었다면 해리포터는 작가 조앤 롤링의 책장에서 운명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제대로 된 안목이 없어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작품들이 있다.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도 그중 하나다. 차이콥스키가 낳은 걸작으로 도입부의 선율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코미디 배우들이 좌절하는 척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땅바닥에 쓰러질 때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빰빰빰빰(파 레♭ 도 시♭).’ 호른이 비장한 소리를 내면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둘러싼 일화는 18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는 차이콥스키에게 특별했다. 작곡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완성한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음악적 동반자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처음 선보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고 초연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계획은 루빈스타인이 입을 여는 순간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루빈스타인이 비난에 가까운 악평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찮고 흔해 빠진 곡인 데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낀 흔적까지 보인다. 한두 페이지 정도만 쓸 만하고, 나머지는 찢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차이콥스키는 심한 모욕감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루빈스타인은 차이콥스키에게 곡을 고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단 하나의 음표도 바꿀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협주곡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

한스 폰 뷜로는 차이콥스키의 작품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뷜로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진주 같은 작품”이라며 “그는 세상 모든 피아니스트의 감사를 받을 만하다”고 극찬했다. 결국 뷜로에게 헌정된 이 곡은 1875년 10월 25일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차이콥스키는 이를 계기로 러시아를 넘어 국제적 명성을 얻는 작곡가로 부상하게 된다. 루빈스타인과의 갈등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루빈스타인이 자신의 오판을 깨닫고 그에게 화해를 구하면서 오랜 우정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이콥스키도 많이 누그러졌다. 작품에 손대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었다. 피아니스트 에드워드 댄로이터와 알렉산더 질로티의 조언을 수용하면서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세 개의 판본을 발표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은 그의 마지막 판본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기나긴 여정을 지나 탄생한 명작이 바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b♭단조 협주곡인 이 작품은 호른의 장대한 선율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오케스트라가 다채로운 음색으로 거대한 화음을 이루는 순간 피아노가 상행하는 화음을 세게 내려치면서 열정에 찬 악상을 토해낸다. 이내 바이올린과 첼로가 짙은 애수 섞인 선율을 살려내면, 피아노가 명료한 터치와 응축된 에너지로 선율을 이어받으면서 차이콥스키 특유의 찬란한 서정을 펼쳐낸다. 1악장에서는 역동적이면서도 극적인 악상을 끌어내는 피아노 선율과 광활한 음악적 흐름을 조성하는 오케스트라 선율이 경쟁하듯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느린 악곡과 스케르초(빠른 3박자 형식) 악곡을 더한 듯한 독특한 형식의 2악장에서는 플루트가 맑은 음색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애달픈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청아하면서도 또렷한 음색으로 선율을 확장하면서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마지막 악장. 두 번째 박자에 놓인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와 스타카토, 꾸밈음이 이뤄내는 피아노의 경쾌한 악상과 오케스트라의 광대한 악상이 조화를 이루면서 차이콥스키 특유의 풍부한 입체감을 펼쳐낸다. 후반부에서 피아노 홀로 등장해 손동작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주와 엄청난 힘으로 옥타브로 이어지는 화음을 쏟아내는 구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압도감을 선사한다. 끝에 도달할 때까지 고조되는 오케스트라의 황홀한 색채, 피아노가 펼쳐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에 집중한다면 차이콥스키가 그려낸 절정의 환희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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