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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국가 신용등급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일제히 '인구 고령화'를 꼽았다. 긴축 기조로 정부의 부채상환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공공부문 재정의 고갈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전망에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의 경우 2050년에 최악의 신용등급 강등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2060년 주요국 절반이 인구문제로 신용등급 강등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S&P와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인구 통계 악화가 주요국들의 신용등급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일부 국가는 전면적인 인구 구조 개혁 없이는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또 다른 차입비용 상승과 재정부담 증가를 낳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무디스의 디트마르 호르눙 부대표는 "과거에는 인구 통계가 (국가 등급의) 중장기적인 고려 사항이었지만, 이제는 이미 직접적이고 단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긴축 움직임이 저출산 고령화 국가의 신용 위기에 불을 지폈다. 높은 기준 금리는 고령화로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발목잡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연금·보건의료 등 재정지출 부담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마르코 므르스닉 S&P 수석 애널리스트는 "자체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해본 결과 미국과 일본, 영국, 이탈리아 등은 차입비용이 1% 포인트 인상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60년에 40~60%포인트 가량 불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 채무 비율을 현상대로 유지하려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거나 재정 개혁을 하거나 둘중 하나는 해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S&P는 올해 1월 보고서에서 "인구 고령화 비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40년 내로 전 세계 81개 주요 경제국 중 절반 가량의 국채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정크)'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크 등급을 부여받은 국가 비율이 2025년엔 전체의 33.33%가 되고, 2060년이 되면 49.38%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개혁 늦을수록 고통 커져"
S&P는 또 GDP 대비 연금 지출 비중이 2060년까지 평균 4.5%포인트 증가해 9.5%에 이른다고 내다봤다. GDP 대비 보건 서비스 지출 비율은 같은 기간 2.7%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S&P는 "일반적인 정부들의 경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25년 2.4%에서 2060년 9.1%까지 커질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피치의 에드워드 파커 국가신용리서치 글로벌 대표는 "인구 통계는 긴 호흡으로 변화하지만 그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는 보다 긴박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나라들이 인구 문제로 인한 부작용을 겪고 있으며,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며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조치를 늦출수록 추후 더 큰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별 국가들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무디스는 "독일은 노동시장의 인구 구조적 문제가 이미 가시화된 대표적인 나라"라면서 "조속한 개혁이 없다면 내년 잠재 경제성장률은 더욱 둔화할 것"이라고 했다. S&P는 1월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는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 연금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며 "이번 81개국 대상 조사에서 고령화 관련 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 유일한 나라가 그리스"라고 했다.
FT는 "미국의 경우 최근 부채한도 협상에서 공화당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 지출 삭감, 구조적 예산 개혁 등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점이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전했다. 아시아 주요국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피치의 파커 대표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 중국은 2050년이 되면 (인구 문제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